아케치 히데키
대학의 마작 서클 부장. 어렸을 적부터 엘리트 교육을 받으며 자라났지만, 의외로 남을 업신여기는 일 없이 항상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모든 이를 친절하게 대한다. 할머니의 영향으로 인해 룰 상 로컬 역이 무효한 경우에도 로컬 역을 만들어 버리고는 한다. 타인에게 알려지고 싶지 않은 과거가 있는 듯하며, 과거와 관련된 화제가 나올 때면 항상 얼버무리곤 한다.
Profile
Skins
아케치 히데키의 기본 스킨.
아케치 히데키와 계약을 맺었을 때 획득 가능한 스킨. "여기 좀 앉으실래요?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내 곁에 있어줄 수 있나요?"
악마의 서약 한정 스킨. "안녕하세요, 검은 깃털의 사자, 아케치 히데키가 당신을 맞이합니다. 저와 함께 달빛이 가득한 나라로 가시죠. 거절하지 않을 거죠?"
운명의 여름 한정 스킨. "여기는 바닷바람이 부드럽네요. 앉아서 잠깐 쉬자구요. 해가 지기 전에 우리의 작은 성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당신이 마음에 들어 할 거예요~"
지난 여름의 회상 한정 스킨. "{name}? 여기서 당신을 만나다니, 생각지도 못했네요. 보시다시피 전 가족들이랑 축제에 왔지만…… 지금은 혼자가 되어버렸죠. 당신도 혼자라면, 같이 있을까요? 저랑 불꽃 보러 가시죠."
아늑한 물안개 한정 스킨. "제가 방금…… 잠들었었나요? 요즘은 동아리 일도 많지 않고 곤란한 일도 없어요. 그런데도 이렇게 된 건…… 아마 당신이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너무 편해져서 그런가 봐요."
Emotes
Bond Requir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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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일반
감사합니다, 당신다운 선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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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기쁨
이건… 기억해 주신 건가요.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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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레벨업5
승리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이건 전국 대회에서 얻은 교훈이죠. 그러니까… 제가 '작탁의 마왕'이라는 사실은 둘만의 비밀로 해요. 알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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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레벨업1
동아리 활동에는 문제 없으신가요? 무슨 일 있으면, 언제라도 제게 상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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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레벨업2
힘드시면 제게 말씀해 주세요, 당신은 이미 충분히 노력하고 계신답니다. 잠깐 쉬어도 괜찮아요. 저도 함께 도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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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레벨업3
다음에는 함께 승마를 해 보실래요? 괜찮습니다, 천천히 가르쳐 드릴 테니까요. 이래 뵈도, 저는 승마가 특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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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레벨업4
예전의 저는 하염없이 승리만을 추구해 왔습니다. 그 때문에 많은 것들에서 눈을 돌려 왔지요… 지금은… 당신과 함께 마작을 치는 과정을 소중히 여기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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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새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도 즐거운 일이 가득했으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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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발렌타인데이
당신에게 이걸 선물해 드릴게요, 당신이 이전에 이야기했던 물건이랍니다.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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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상호작용1
승리는 확실히 중요한 것입니다만, 거기에 이르는 과정 또한 중요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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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상호작용2
당신이 와 주신 덕분에, 동아리 활동이 정말로 활발해졌답니다. 답례로 뭔가 대접해 드리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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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상호작용3
저는 마작 동아리의 부장이기는 합니다만, 만약 당신이 동아리에 참가해 주지 않으셨다면 지금쯤 많이 곤란해졌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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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상호작용4
전국 대회 우승이요? 아뇨, 분명 착각일 겁니다. 세상에는 닮은 사람은 많으니까요. 그리고, 그 '작탁의 마왕'과 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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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상호작용5
혼천 신사는 좋은 곳이군요. 마치 할머니 댁처럼 편안한 풍경에 재미있는 분들도 많이 계셔서 왠지 안정이 되네요.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잠시 과거를 떠올렸을 뿐이랍니다. 신경 쓰지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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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상호작용6
소원 말인가요… 언젠가 제가 아케치 가문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하지만 지금 당신과 함께하는 일상은, 정말 기분 좋은 나날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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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상호작용7
"마작을 할 때에는, 결과보다도 과정을 즐기자꾸나." 이건 할머니께서 저에게 알려 주신 말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좀 더 할머니를 더 자주 뵈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당시의 어리석었던 저는 이기는 것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지요. 결국 승리를 손에 거머쥐었을 때, 이미 할머니께선…… '작탁의 마왕'이라는 이름은, 참 아이러니한 호칭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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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상호작용8
로컬 역에 흥미가 있으신가요? 제가 알려 드리도록 할까요. 할머니께 잔뜩 배워 왔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자꾸만 로컬 역을 만들어 버리려는 버릇이 생겼지 뭐예요. 재미있는 역은 많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쓰이지 않는다는 게 유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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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일반
어라, 제게 상담할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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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최고 인연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함께 숨이라도 돌리지 않으시겠어요? 마작이든 뭐든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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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당신과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런 일상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두려워져요. 계속 이대로만 지내고 싶네요. 물론, 마작에 관한 얘기만은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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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친선전 입장 시
저도 같이 하시죠. 혹시 기다리게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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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친선전 준비 시
저는 준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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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득 음성
안녕하세요. 아케치 히데키라고 합니다. 저는 마작을 좋아해서, 대학에서도 마작 동아리의 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당신은 마작을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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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북을 빼가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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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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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리치
더블 리치입니다. 주의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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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
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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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
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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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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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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쯔모
죄송합니다, 쯔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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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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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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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찬타
준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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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구련보등
순정구련보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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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삼원
대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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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희
대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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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화
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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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리치
더블 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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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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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
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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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10
도라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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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11
도라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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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12
도라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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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 13이상
도라 잔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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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2
도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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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3
도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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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4
도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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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5
도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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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6
도라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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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7
도라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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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8
도라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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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9
도라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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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북
더블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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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동
더블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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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남
더블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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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서
더블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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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야오
탕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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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이또이
또이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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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페코
량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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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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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무쌍 13면 대기
국사무쌍 13면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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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무쌍
국사무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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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로월
해저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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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저로어
하저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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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노두
혼노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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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타
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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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일색
혼일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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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련보등
구련보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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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개화
영상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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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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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국만관
유국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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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일색
녹일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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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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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후
핑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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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깡
창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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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또이쯔
치또이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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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노두
청노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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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색
청일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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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안커
산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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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깡쯔
산깡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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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색동각
삼색동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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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색동순
삼색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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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안커
스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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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안커 단기
스안커 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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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깡쯔
스깡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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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화
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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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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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삼원
소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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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희
소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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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페코
이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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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발
일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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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통관
일기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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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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쯔모
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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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일색
자일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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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저의 승리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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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높은 점수로 승리
죄송합니다. 조금 아플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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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론으로 승리
이번에는 제 쪽에 운이 왔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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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만
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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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종구패
구종구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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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만
헤아림 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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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관
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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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텐
후우… 노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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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배만
삼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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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풍연타
사풍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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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깡유국
사깡유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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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리치
사가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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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네만
하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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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파이
텐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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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만
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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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역만
더블 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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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 역만
트리플 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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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배 역만
사배 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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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배 역만
오배 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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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배 역만
육배 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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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도라를 버릴 때
제 입장에서는 괜찮게 흘러갔지만, 다른 분들은 괜찮지 않을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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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배만/삼배만 텐파이
여러분, 주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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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연속으로 같은 패를 버릴 때
이 정도야 늘 있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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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남은 패가 10장 이하일 때
마지막까지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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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 시작
대국을 시작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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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역만 텐파이
가끔은 이런 것도 시험해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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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요구
대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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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
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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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또이
장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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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구조
금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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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방총
영상방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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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치또이
용치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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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또이
청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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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금구조
청금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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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치또이
청룡치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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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치또이
청치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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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십팔라한
청십팔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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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요구
청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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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팔라한
십팔라한.
정해진 미래
인연 Lv.1 오픈
히데키는 어려서부터, 자신의 부모님이 다른 부모님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부모님께서는 아침 식사 자리에서 그에게 인사를 건네는 일이 드물었으며, 그는 한 번도 잠들기 전에 부모님께 입맞춤을 받아본 적이 없었고, 부모님이 읽어주는 동화를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의 부모님은 항상 바빴기에 그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적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는 얌전하고 똑똑한 아이였기에 집에서 혼자 노는 방법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축음기, 라디오…… 그의 방을 '떠들썩'하게 만들어 줄 각종 '소리 박스'가 그의 친구였다. 그중, 아케치 히데키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텔레비전이었다. 사각형의 화면에서는 신기한 물건들과 화목해 보이는 가정의 모습들이 비치곤 했다. 텔레비전 속의 훈훈한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이날 히데키는 밤늦게까지 졸음을 참아가며 늦게 귀가한 아버지를 맞이했다. 그리고 그는 새로 배운 종이접기로 만든 작품을 조심스럽게 아버지 앞으로 가져갔다. “제가 직접 접은 토끼예요, 아버지께 드릴게요.” 어린 히데키는 까치발을 들곤 직접 접은 토끼를 아버지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보던 대로라면, 이제 아버지가 그를 품에 안아 주며 칭찬을 건넨 뒤, 집사에게 이 작품을 소중히 보관해 두라고 말했을 것이다…… 처음으로 텔레비전 속 장면을 따라해 본 어린 히데키는,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가 본 것은 오후 내내 접었던 종이 토끼가 바닥을 뒹굴며 의자 바퀴에 뭉개지는 모습이었다. “이런 건 네 미래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으니, 다시는 이런 쓸데없는 짓 하지 말거라." 아버지의 말투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아들이 열심히 만든 선물보다 문서에 사인하는 일이 더 중요해 보였다. “너도 무언가를 배울 준비가 된 것 같구나. 내일부터는 사람을 붙여 줄 테니, 수업을 듣도록 하거라. 장차 뛰어난 정치가가 되는 것이야말로, 네가 목표해야 할 일이다." “정치…가? 아버지. 전, 전 잘 모르겠어요." 아버지는 처음으로 서류에서 눈을 떼곤 히데키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아케치 가문에 태어난 순간부터, 우수한 정치가가 되는 건 이미 정해진 일이다. 네게 선택지는 없다.” 아케치가의 가주였던 아버지에게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고, 자신의 어린 아들이 본인의 말을 알아들었는지는 그에게 별로 중요치 않았다. 아버지는 손을 휘저으며 히데키에게 더 이상 방해하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렇게 어린 히데키는, 결국 아버지로부터 아무런 칭찬도 받지 못했다. 그는 처참히 구겨져 바닥을 뒹구는 종이 토끼를 보곤 입술을 깨문 채, 눈시울을 붉히며 중얼거렸다. “난…… 이런 건 싫어……” 정치가가 되는 게 싫었던 것인지, 아버지의 냉담한 모습이 싫었던 것인지, 이 문제는 이후로도 긴 시간 동안 히데키를 괴롭혔다.
미소
인연 Lv.2 오픈
중학교 시절 학생회장에 당선된 후, 히데키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법을 스스로 터득했다. 그는 아버지의 엄숙한 모습과는 달리, 미소를 통해 자신을 감추는 일에 익숙했고 아주 뛰어났지만……때로는 예외의 상황도 있는 법. “방학이라고 할머니 뵈러 왔구나? 어이구, 고작 반 년을 못 봤다고 그새 또 키가 컸네!” 히데키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이웃집 할아버지의 우렁찬 환영 인사를 들었다. 이 작은 마을의 열정 가득한 성격의 사람들 덕분에 방학 때마다 매번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곤 했다. 아버지의 엘리트주의에 속박되어 있었던 그에게, 이런 반가운 환영 인사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히데키는 마음 깊은 곳에서 고개를 드는 작은 불편함을 애써 무시하면서,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인사를 건넸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하하하, 사랑스러운 녀석. 기다려 보거라! 이 할애비가 사탕을 주마!” 이웃들이 크게 웃기 시작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의 근처로 가서는 자신의 말썽꾸러기 손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고, 이어서 온 골목에 즐거운 웃음소리가 점점 울려 퍼졌다. 그렇게 분위기는 무르익었고, 다들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히데키는 그의 뒤에서 자신을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는 할머니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밖에 있을 때면, 할머니는 언제나 히데키의 체면을 살려 주었다. 집마당에 들어서자 할머니는 그를 멈춰 세우곤 말했다. “히데키, 웃음을 위해 웃지는 말거라.” “어……” “사람들이 미소를 좋아하는 이유는, 미소가 즐거움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미소만이 그런 마법을 부릴 수 있지.” 할머니께서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웃고 싶지 않다면 웃지 말거라, 이 할미는 네가 더 아름답게 미소 짓는 모습을 보고 싶구나.” 항상 보기 좋다는 칭찬만 들어 왔던 그의 미소에 '보기 안 좋다'는 평가를 들은 것은 처음이었고, 이 일은 아케치 히데키의 마음을 꽤나 답답하게 만들었다. 마당 구석에 놓여 있는 물이 가득 담긴 항아리의 앞에서, 히데키는 할머니께서 말씀하신 '좋은 미소'를 만들기 위해 조용히 '연습'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늘의 노을이 한층 붉은빛으로 물들 때도, 히데키는 원하는 결과를 얻어 낼 수 없었다. 그는 연습으로 얼얼해진 볼 근육을 문지르며, 넋을 놓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너무 어려워……' 이내 이와 같은 생각들이 그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치.” “퐁……” “3삭!” 옆에서 들려온 소리에 히데키는 정신을 차렸다. 근처에선 익숙한 단어들과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히데키는 이 소리가 마작을 하는 소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작은 이한시 사람 모두가 빠져 있는 오락이었기에, 아버지께서 게임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해도 히데키 역시 마작에 대해서는 간단하게나마 알고 있었다. 히데키는 마작패가 부딪히며 내는 타닥거리는 소리에 홀려,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가만히 서서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돌멩이 하나가 잔잔한 호수에 물결을 일으키듯, 그의 마음속에도 벽 너머 세계에 대한 동경의 파동이 일어났다. 히데키 역시도 이 즐거운 일에 함께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엄격함이 마음속 깊이 씌워져 있던 그의 몸은, 그가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내딛으려는 것조차 쉽사리 허락해 주지 않았다. “히데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났는지, 집안에서부터 할머니께서 히데키를 찾으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히데키는 빠른 걸음으로 도망치듯 집 안으로 돌아갔다. 마치 방금 전 느꼈던 모든 것들을 잊기라도 하려는 듯이. 하지만 무슨 영문인지, 그의 마음을 어지럽히던 마작패가 바로 거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히데키는 할머니를 향해 의문의 눈빛을 던졌다. “배우고 싶지 않니?” “아뇨……” 히데키는 결코 마작에 대한 동경심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 즐거운 놀이일 것이라고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러함과 동시에, 그의 본능은 혹여 이 일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마작을 배우는 것을 거부했다. “마작패의 종류처럼 기본적인 건 대충 알 테니, 오늘은 그 패를 어떻게 쓰는지에 대해 알려 주마. 그럼 우선 슌쯔, 커쯔, 또이쯔에 대해 알아보자꾸나……” “할머니!” 자신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계속 마작에 대해 설명하려는 할머니께, 히데키는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결국 언성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신 건 할머니 혼자 계시면 적적하실까 하는 걱정 때문이지, 결코 놀이나 하면서 놀게 하기 위함은 아니었을 겁니다.” 혹여나 자신이 마작의 유혹에 넘어가 버릴까 두려워 히데키는 마작패에 흥미를 뒀던 눈빛을 끝내 거둬들이고 말았다. 하지만 나를 잘 아는 이로부터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히데키의 마음을 간파한 할머니는, 그의 손에 풍패를 하나 호탕하게 쥐여 주며 말했다. “할미는 그저, 네가 건강하고 즐겁게 컸으면 하는 바람뿐이란다. 흥미가 있다면 잘 배워 두고, 네 아비가 어찌 생각할지는 고민하지 말거라.” '훌륭한 후계자'가 되는 것에 비하면, 할머니의 요구는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히데키의 어깨에 올라간 주름진 두 손. 그로부터 전해지는 온기가, 지금 그에게 무한한 용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간 정적이 흐른 후, 곧이어 방 안에 히데키의 선명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할머니, 화료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 차 한 잔을 마실 시간. 마작 테이블 위에는 자신이 만들어 낸 로컬 역이, 거부할 수 없이 달콤한 사탕처럼 펼쳐져 있었다. 원하는 패가 나온 찰나,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기쁜 감정이 히데키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활짝 웃었다. 감정을 숨기는 일 따위는 완전히 잊어버린 채. 이 시각, 그는 자신이 마작이라는 게임과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할머니는 옆에서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 히데키, 그렇게 웃어야 예쁘지.”
소원
인연 Lv.3 오픈
“당연히 <실낙원>을 현실화해야지! 그러면 모두가 마음에 품었던 진실한 소원을 이루게 될 거고, 굳건히 지켜온 정의를 세상에 보여 줄 수 있을 거라고!” 국립 후우치 대학의 마작부 훈련 도중, 누군가 마작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혼천 신사에서 소원을 이뤄 준다는 전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고, 이를 들은 시노미야 나츠키는 그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내놓았다. 그러자 그의 바로 앞에 앉아 있던 히데키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음, 여긴 서로 비밀을 감출 필요가 없는 곳인가? 확실히 괜찮을 것 같네. 훈련 도중 난데없이 시작한 토론에 부장이 아무 제지도 하지 않자, 다른 부원들 또한 저마다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원을 주제로 한 토론이 시작되었다. “나는 나만의 꽃집을 갖고 싶어. 그럼 매일 엄마한테 새로 핀 꽃을 줄 수 있을 테니까. 음…… 그러면 엄청 기쁠 것 같네.”──히나타의 소원은 아주 상냥하고 따뜻하군. “학교에서 연구부에 실험 예산을 더 많이 줬으면 좋겠어, 최대한 많이!” ──음, 미라이는 의외로 현실적인 소원을 가졌구나. “……소원은 꼭 하나만 이룰 수 있는 건가요? 그럼…… 가족들이랑 한번 만나 보고 싶어요.” ──그래, 유이는 이 주제에 그다지 어울리고 싶지 않은 것 같네. 히데키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패를 매만지며, 부원들이 말한 소원들의 실현 가능성을 혼자서 가늠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 시끌벅적하던 부실이 조용해지고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자, 히데키는 자신 역시도 소원 토론에 강제로 참여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히데키는 마작 시합의 승패에는 큰 관심이 없었기에, 당연하게도 우승 상품 역시 큰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신을 차리곤, 진지하게 소원을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이 창밖 운동장의 초록 잔디에 닿았다. 그 생기 넘치는 풍경에 히데키는 과거 자신의 귀를 스쳐 지나가던 경마장의 바람이 떠올랐다. 그건 그가 진정으로 자신을 위해 사용했던 몇 안 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어렵사리 얻은 소원권을, 경마 참가 따위에 쓰는 건 사실 낭비가 아닐까? 히데키는 고민 끝에 고개를 저으며 이러한 생각을 접었다. 그럼 마작부가 전국 대회에서 우승하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빌자. 이런 소원이라면 마작부 부장이라는 내 신분에도 딱 맞는다. 하지만…… 진정한 본인의 실력으로 우승을 따내야만 모두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을 텐데, 이런 일에 굳이 혼천 신사의 힘을 빌려야만 할까? 마치 히데키의 마음을 알아차린 듯이, 갑자기 살랑이는 바람이 창문을 타고 넘어와 책상 위에 놓인 A4용지를 펄럭이며, 그에게 마음속에 담긴 솔직한 이야기를 하라고 부추겼다. 그는 눈을 감고는, 다른 사람에게 속마음을 들킬 가능성을 차단했다. 솔직한 마음이 피어난다. 부모님께 사과를 받고 싶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할머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전국 대회 때로 돌아가 허술했던 플레이를 바로잡고 싶다. 그리고 또…… 생각하다 보니 떠오르는 소원이 너무나도 많아서, 결국 열 손가락으로 다 헤아리지 못할 정도였다. 히데키는 이 전설이 어째서 그렇게 매력적인 것인지를 문득 깨달았다. 인간의 욕망이란, 이렇듯 한 가닥의 희망에도 크게 부풀 수 있는 것이었다…… “하하하, 깡. 부장, 부장 차례야~!” 마작패가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가 히데키를 현실로 데려왔다. 황급히 고개를 들자, 그는 그제야 자신이 마작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그리곤 시끌벅적한 소리가 히데키를 둘러싸며, 그가 다시 고독과 아쉬움으로 가득 찬 기억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막아 주었다. 히데키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제는 침울했던 기억도 갈수록 다채로워졌고, 웃음소리 역시 갈수록 밝아졌으며, 고독히 앞만 보고 나아가던 자신의 주위에도 어느샌가 많은 친구들이 생겼다는 사실을. 모든 것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니 이런 즐거운 나날들이 더욱 오래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라면, 무언가를 억지로 바꾸려 하기보다는 분명 현재를 유지하는 편이 더 좋을 것이었다. 이 사실을 깨달은 히데키는 이내 해맑게 웃으며 패를 넘겼다. “미안, 그걸로 화료야. 창깡, 준찬타, 도라2, 12000!” “에?!” 부원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대국 기록을 확인하기 위해 달려 나갔고, 히데키는 마침내 홀로 책상에 앉아 마음속 깊이 바라는 소원을 빌었다. 모든 것이 지금과 같이 흘러갈 수 있기를. 그 이상을 바란다면, 욕심이겠지.
어둠 뒤 오페라
인연 Lv.4 오픈
Possible Endings
Scenario Script
Spots 9, Scenes 257, Choices 3, Endings 0
한바탕 쏟아진 눈이 온 도시를 하얗게 물들였고, 바람이 행인들의 등을 떠밀고 있다. 눈 위를 밟으며 내는 서걱거리는 소리가 백색으로 뒤덮인 거리를 한층 더 활기차게 만든다.
이 도시는 늘 낭만적이다. 극장 앞에는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 있고, 음악에 대한 그들의 열정을 한겨울의 추위로는 막을 수 없다. 좌우를 두리번거리자, 곧 약속 상대를 찾을 수 있었다.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청년이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계단 앞에 서 있다. 훤칠한 키에 또렷한 이목구비, 넓은 어깨와 날렵한 몸매에 캐주얼한 차림으로 서 있는 그는 귀족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며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character:player}부장~ 이쪽이야~!
나는 손을 흔들며 그를 불렀다. 그리고 사람들 속에 섞여 있는 나를 발견하고 걸어오는 그의 모습을 확인한 뒤 손을 내렸다.
미라이가 발명한 인공지능 마작 테이블이 고장 났고, 나는 국립 후우치 대학 마작부의 임시 코치로 초대를 받았다. 마작부가 지난주 인근 학교와의 친선 경기에서 승리하자, 히데키는 나에게 보답 차원으로 오페라 공연을 보여 주겠다며 초대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이곳은 마작부가 아니에요, 사적인 자리에서는 그냥 이름으로 불러 주셨으면 합니다.
{character:player}마작부 훈련할 때 시노미야쪽 애들이랑 같이 부르다 보니 습관이 되어버렸지 뭐야…… 넌 언제 도착한 거야? 오래 기다렸지?
입김이 순식간에 새하얀 안개처럼 퍼져나갔다. 모호한 안개 속에서 순간적으로 몸이 파르르 떨렸고, 나는 조금이라도 추위를 떨쳐내기 위해 발을 번갈아 가며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제가 5분 정도 빨리 왔네요. 아직 공연 시작까지 여유가 있으니 들어가서 구경을 좀 하는 게 어떨까요? 기껏 이한시에서 가장 큰 극장에 왔는데 제대로 둘러보지 않으면 아깝잖아요.
{character:player}아주 좋은걸, 어떤 '좋은 분'께서 가이드까지 해 준다면 금상첨화일 텐데.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당연히 해 드려야죠, 영광입니다.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진 벽과 지붕은 냉기와 소음을 차단했고, 거울처럼 반짝이는 대리석 바닥은 천장이 비칠 정도였다.
나는 히데키의 곁에서 천천히 걸으며 건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히데키는 디자인에 관한 어렵고 전문적인 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줘서, 듣는 이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전해지는 이야기로는 건축가가 설계도를 그리기 전에 진귀한 야명주를 손에 넣었는데, 그 '명주'의 컨셉을 디자인에 접목 시키고 싶어했습니다. 이 극장의 거대한 타원형 디자인이 등장한 배경이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외계의 무언가를 표현한 것이라 여기고 있다고 합니다.
{character:player}음, 만약 누가 설명해 주지 않았다면, 내 부족한 상상력으론 단순하게 달걀 껍데기 정도로 치부했을 거야.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그렇게 이해하시는 것도 틀리지 않습니다. 달걀 껍데기는 생명을 품은 존재이니, 예술적 생명을 잉태하면 언제든 껍데기를 깨고 부화할 수 있죠. 그것이 문화의 부흥이든, 새로운 유행이든, 무언가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character:player}그 말을 들으니 더 재밌는걸. 부장…… 아니, 히데키는 이곳에 대해 잘 아는 모양이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저희 아버지께서는 오페라를 즐겨 듣습니다. 음악으로 사람의 내적 역량을 갈고닦을 수 있다고 믿으시죠. 제 기억으로, 여섯 살 때부터 저를 이곳에 데려오시곤 했는데, 자주 올 때는 한 달에 두세 번도 왔습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그때만 해도 시립 오페라 극장은 꽤나 전통적인 옛날 스타일의 건물이었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달걀 껍데기'는 리모델링을 통해 증축된 모습입니다.
{character:player}어쩐지 이 극장에 대해 정말 잘 알고 있더라……
자신의 관심사에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깊이 파고드는 것, 아마 그것이야말로 히데키가 대단한 이유일 것이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공연 시작 시간에 가까워졌다. 매표소로 가던 중 극장 안의 카페가 나의 관심을 끌었다. 내가 머뭇거리고 있는 것을 눈치챈 점원이 나를 보며 적극적으로 홍보를 시작했다.
{character:점원}겨울엔 역시 따뜻하고 달달한 사랑이 필요하죠! 가게 오픈 3주년 특별 음료 "허니허니"가 출시되었는데, 한번 드셔 보시겠어요? 향기롭고 달콤한 차를 마시면서 차가운 손도 좀 녹이세요.
{character:점원}두 잔을 주문하시면 한 잔은 50% 할인해 드리는 행사가 진행 중입니다.
제품을 홍보하던 점원이 나와 히데키가 일행이라는 것을 눈치채곤 재빠르게 행사 내용을 덧붙였다.
{character:player}그게……
은은한 꿀향이 섞인 차의 향기가 나의 후각을 자극했고, 나는 망설임 없이 두 개의 손가락을 세우며 점원에게 두 잔을 주문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var:player_nickname}씨도 '두 번째 잔 반값' 같은 영업 수단에 넘어가실 줄은 몰랐군요, 미리 알았다면 당신에 대한 영입 전략을 바꿨을 텐데.
{character:player}꼭 그런 건 아니야. 밖에서 너무 오래 있었잖아, 몸이 다 얼어붙겠어, 따뜻한 음료로 몸을 좀 녹일 필요가 있지.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죄송합니다, 그 점을 고려하지 못했네요. 외투를 하나 더 걸치면 괜찮아지실까요?
{character:player}아니야, 따뜻한 음료면 충분하니까, 외투는 네가 계속 입고 있어.
나는 손사래를 치며 제안을 거절했고, 점원이 건네주는 봉투를 히데키 대신 받아 들었다.
{character:player}응? 잠깐, 난 두 잔만 주문했을 텐데……
{character:점원}옆 분께서 따로 요청하신 게 있어서……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히데키를 바라보았다. 히데키는 음료가 담긴 봉투를 건네받곤, 다른 두 잔을 꺼내 들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이 두 잔은 따듯한 물입니다, 이걸로 손을 좀 녹이세요. 역시 음료는 제대로 음미하는 편이 좋겠죠, 점원들이 힘들게 만들었으니까요.
그의 목소리에는 듣는 사람이 수긍할 수밖에 없는 마력이 있었다. 점원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그가 이미 '아케치 히데키'라는 소용돌이에 빠져 버렸다는 사실을 숨김없이 알게 해 주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가시죠, 공연이 곧 시작됩니다, 표 검사도 해야 돼요.
오페라 공연 시간은 약 3시간. 화장실을 가기 위해 다른 관객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수분 섭취를 줄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나는 고개를 저으며 점원의 호의를 뿌리친 채 히데키를 데리고 곧장 공연장으로 향했다.
우리는 이미 공연장 앞에 도착했지만, 내 정신은 여전히 매혹적인 차 향이 풍기는 그 음료 가게에 남아 있었다.
{character:player}그 짙은 향기, 분명 엄청 맛있겠지……
나는 표 검사를 기다리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고 있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줄 서는 사람이 많네요, 20분 정도 더 걸릴 것 같은데… {var:player_nickname}씨,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금방 돌아올게요.
{character:player}응? 어딜……
히데키는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몸을 돌려 모습을 감췄다.
홀로 극장 벽에 걸려 있는 포스터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보니, 돌아온 히데키가 시야에 들어왔다. 낯익은 종이봉투를 든 상태로.
{character:player}앗, 이건…… "허니허니"?!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아까 극장을 돌아보고 계실 때, 추우신지 계속 손을 비비고 계시더라고요, 아마 밖에 너무 오래 있었기 때문이겠죠. 아무래도…… 이런 따뜻한 음료가 필요할 거 같네요.
{character:player}방금 사라진 게 음료를 사러 갔던 거였어?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마음에 들지 않으신가요? 그 가게에서 나올 때 굉장히 아쉬워 보였어서.
{character:player}아니, 좋고 말고, 네가 거기까지 생각해 줄 지는 몰랐어.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오늘은 {var:player_nickname}씨에게 감사를 전하기 위한 자리인 만큼, 손님의 기분이 가장 중요하죠.
히데키는 봉투에서 음료를 하나 꺼내들곤 나에게 건넸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이건 당신 거예요, 뜨거우니 조심하세요.
{character:player}고마워…… 근데, 네 건 그다지 따듯해 보이지 않네, 점원이 실수했나?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하하, 저는 별로 안추워서요, 두 잔을 산 건 그냥……
{character:player}그냥…… ?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두 번째 잔은 반값이니까요.
{character:player}……
아무리 봐도 히데키는 '두 번째 잔 반값' 같은 장삿속에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가요, 우리 차례예요.
홀에 들어서자, 나는 놀라는 동시에 '이한시 최대 규모'의 극장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다는 것을 느꼈다.
안과 밖의 경계가 또렷하지 않은 공연장은, 금색과 빨간색의 조합과 아름다운 도금 조각상들이 완벽히 어우려져 있었다. 넓게 통일된 컬러 블록의 영향인지, 여기 있는 나 자신이 작아졌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character:player}오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이 만석이라니, 몸에 전율이 흐를 정도인걸.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음악이란 언어 없이도 소통을 가능케 하는 수단이죠. 배우가 전달하는 감정을 한순간에 체감할 수 있는 느낌 역시 오페라 관객이 많은 이유일 거예요.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게다가 이건 유명한 배우들까지 나오는 오페라인 만큼, 어쩌면 당연한 일이죠.
{character:player}음…… 표가 꽤 비쌌을 텐데, 큰 돈을 쓰게 한 것 같아 마음이 무겁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var:player_nickname}씨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의미 있는 지출이에요. 게다가 저도 오늘 {var:player_nickname}씨에게 새 '지식'을 배웠는걸요.
{character:player}엥?!
히데키가 손에 들린 잔을 가볍게 흔들자, 안에 있던 액체가 찰랑이며 맑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맛이 궁금해서 {var:player_nickname}씨와 같은 맛으로 샀는데, 생각보다 맛있는걸요…… 뭐랄까, 평소 마시던 밀크티보다 로맨틱한 향이 남는달까.
대화하는 사이 관객의 입장이 모두 끝났고, 극장 내에 종이 세 번 울리며, 공연이 이제 곧 시작된다는 신호를 알렸다. 나는 히데키에게 조용히 하자는 손짓을 한 뒤 옷깃을 여미고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character:배우 A}나간다고, 초인종 좀 그만 눌러, 그게…… 엇, 죄송합니다 룸메이트가 온 줄 알았네요. 누굴 찾아오셨나요?
{character:배우 B}혹시 이곳이 김 선생님 집인가요? 어제 연락드렸는데요.
{character:배우 A}잘못 찾아오신 듯합니다, 선생님. 김 선생님 댁은 옆집이에요, 그 집 래브라도는 사나우니, 지나가실 때 조심하세요.
{character:배우 B}당신이 문을 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분명 제가 잘못 찾아왔던 것이 맞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문을 연 순간, 저는 이것이 하늘의 뜻이었음을 깨달았지요. 아름다운 아가씨, 저는 올해 스물넷입니다, 부모님께선 건강하시고, 집안도 나쁘지 않습니다, 저도 준비 중인……
{character:배우 A}저기, 잠시만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character:배우 B}당신이 문을 연 순간, 저는 첫눈에 당신께 반해 버렸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연극은 10대 오페라 중 하나로 꼽히는 <살구 꽃 이슬비>였다, 평범한 집안의 여인이 귀공자와 만나 신분의 제약과 세간의 손가락질을 뒤로하고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다. 그러나 귀공자의 아버지는 신분에 걸맞은 상대를 맞아야 한다며 이별을 강요하고, 그렇게 헤어진 두 남녀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맞이한다.
무대 위, 귀공자 역의 남자 배우는 낭만적이면서도 방탕한 도련님을 재미있게 연기하며 객석의 관객들로부터 웃음을 끌어냈다.
공연용 제설기가 만들어 낸 화려한 눈꽃 아래, 그가 손에 장미를 든 채 한쪽 무릎을 꿇고 관중을 향해 운을 떼니, 공연장은 일순간 그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찼다. 이는 냉혈한의 마음마저도 움직일 법했다.
그러나…… 나는 그 배우에게 뭔가 아쉬운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하며 나도 모르게 옆으로 눈을 돌렸다.
옆에 앉은 히데키는 시종일관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히데키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을 뿐이었지만, 신기할 정도로 기품이 넘쳐흘렀다. 난 이것이 진정한 귀공자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
그가 나로부터 느낀 시선에 할 말이 있는지 물어 왔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는 표시를 하곤, 다시금 무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거운 분위기의 교향곡이 시작되고, 귀공자의 아버지가 아들의 사랑에 대해 눈치챈다. 그에게는 아들의 행위가 가족에 대한 배신과도 같았기에, 그는 '방황하고 있는' 아들이 '정상'으로 돌아오길 바라며. 아들의 외출을 금하고 명문가의 규수와 교제하도록 강요했다.
이렇게 한 쌍의 연인이 강제로 헤어지게 되고, 젊은 귀공자는 아버지의 뜻에 따르는 척을 하며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려 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자는 이성을 잃기 마련이라 했던가, 그는 아버지가 자신의 생일 연회에서 약혼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되는데……
{character:배우 B}아름다운 숙녀 여러분, 아름다운 꽃과 황금, 그리고 달콤한 미소. 모든 것이 사람을 즐겁게 만들죠. 이제 중요한 소식을 하나 발표하려 합니다. 네, 바로 지금 저의 생일 파티에서 말입니다.
{character:배우 C}죄송합니다 여러분, 제 어리석은 아들이 실례를 범했군요, 지금 바로 아들놈을 방으로 돌려보내겠습니다…… 잘 듣거라, 지금은 네가 고집부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만약 네가 가문 계승자로서의 양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당장 입을 다물고 위층에 올라가 있거라. 그러면 방금 전 일은 없던 걸로 해주마.
{character:배우 B}아니요, 아버지, 제 마음은 바뀌지 않습니다.
{character:배우 C}닥치거라!
{character:배우 B}아버지가 지팡이로 제 등을 내려치신다 해도, 저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저를 방에 가둬 두신다 해도, 저는 매일 크게 소리칠 것입니다. 제 혀를 뽑아버리신다 한들, 제겐 여전히 의지를 표할 펜과 종이가 있습니다.
{character:배우 B}저는…… 신문사의 젊은 편집자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녀는 삶에 충실한 사람이며, 자유와 낭만을 바라보고 있죠. 그녀의 웃음은 햇빛마저 물러서게 합니다. 나는 기꺼이 그녀의 석류빛 치마 아래 고개를 숙이고, 온 마음을 담아 그녀의 안부를 물을 것입니다.
{character:배우 B}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그녀가 절 사랑하듯 저도 오직 그녀만을 사랑할 것입니다. 저는 그녀를 아내로 맞이할 것입니다. 그녀의 성을 저의 성으로 바꿔줄 것입니다.
{character:배우 C}닥쳐라, 이런 불효 자식, 네가 정녕 미쳐버린 것이냐!
{character:배우 B}아버지, 저는 그저 누군가를 사랑할 뿐입니다, 이건 위법 행위가 아닙니다. 저는 그녀에게 제 전부를 주고 싶을 뿐입니다……
{character:배우 C}네 녀석이 지금의 신분과 지위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네 모든 것은 가문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다. 보아하니 내가 널 너무 오냐오냐하며 키워서 이 아비를 업신여기고 있는 모양이구나? 집안의 최고 결정권자를 화나게 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보여줄 테니, 그때도 지금같은 순진한 생각을 지킬 수 있길 기대하마…… 여봐라, 이 놈을 끌고 가라! 고생이 뭔지 가르쳐줘야겠다!
순탄한 삶을 살던 젊은이로서는 그의 가장 큰 적이 자신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열변을 토하며 아버지를 설득하려 했지만, 결국 어두운 지하실에 갇히고 말았다. 날이 갈수록 그의 정신과 육체는 죽어가고 있었다.
자유로이 살아가던 이가 고통 당하며 삶의 의욕을 잃어가는 모습, 그것이 그저 대본일 뿐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왜인지 내 마음속에 절실히 와닿았다.
모든 것을 빼앗긴 귀공자는 깊은 숨을 들이쉬며, 달빛에게 애인에 대한 그리움을 토해 놓는다. 나는 그것이 얼마나 애절하고 감동적인 노래인지 느낄 수 있었고, 나와 관객 모두가 함께 노래가 이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character:배우 B}내 사랑하는 이여, 난 기꺼이 내 생명을 바쳐…… 엇?!
남자배우가 이제 막 노래의 첫 마디를 부르기 시작할 무렵, 돌연 깜짝 놀라는 비명소리가 들리며 무대가 깊은 어둠에 휩싸였다.
{character:player}……?
극장이 마치 심연 속에 빠진 것마냥 어둠에 잠겼다. 노랫소리가 갑자기 끊긴 걸 보면, 무대에 무슨 사고가 난 모양이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var:player_nickname}씨, 괜찮으신가요?
{character:player}난 괜찮아. 음, 이건…… 연극의 일부인가?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안타깝게도 그건 아닐 겁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쨌든…… 정전이네요. 흠, 역시 연극을 보러 오지 말걸 그랬어요.
{character:player}그게 무슨 말이야?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사실 여기 오기 전까지 고민했거든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는 대개 비극이 많아서, 저는 그게 좀 불길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거든요.
{character:player}에?! 나는 널 철저한 현실주의자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걸 신경 쓰는 거야?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저는 매년 여름 방학마다 시골에 있는 할머니 댁에 가요. 할머니는 신앙이 있으셨지만 제게 강요하시진 않으셨고, 보통 할머니 혼자 집에 모셔진 불단을 모셨죠. 이제서야 깨달은 거지만, 저도 생각보다 그 영향을 많이 받은 모양이에요.
{character:player}신성한 곳에서는 불경한 말을 쓰거나 쉽게 이별을 고하지 않는… 그런 건가? 아, 이건 그냥 예시일 뿐이야.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네…… 그렇게 생각해도 좋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게 사실이잖아요, 비극적인 오페라를 보다가 극장이 정전돼 버리는 사태. 이 극장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런 사고가 없었거든요. 모처럼 {var:player_nickname}씨를 초대했는데……
히데키의 목소리에서 큰 아쉬움이 느껴졌다, 히데키는 이번 만남을 정말로 신경 쓰는 듯 보였다. 나는 한 발자국 앞조차 보이지 않는 공연장을 보며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랐다. 히데키의 직감이 들어맞은 걸 칭찬해야 하는 건가…
{character:극장 스태프A}관객 여러분, 극장에 정전이 발생했습니다. 15분 이내로 복구 완료될 예정이니, 당황하지 마시고 자리에서 기다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관람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정전으로 인해 안내 방송을 할 수 없게 되자, 극장 관리자가 확성기를 통해 상황을 알리며 관객을 안심시켰다. 공연 도중 발생한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관객들은 당혹스러움과 불만을 감추지 못했지만, 다행히 큰 혼란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안내를 하고 있는 관리자 외에도 손전등을 든 스태프들이 좌석 사이를 돌아다니며 질서를 정리하고 있었다.
스태프들의 손전등 덕분에 더 이상 극장은 캄캄하지 않았고, 나는 의자에 앉아 가볍게 긴장을 풀었다. 희미한 빛을 빌어 옆 좌석의 히데키를 바라보자, 그 역시 이를 느낀 듯, 고개를 돌려 날 마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1분…… 2분…… 3분……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어둠은 그 기다림을 더더욱 길게 만들었다. 15분이 훌쩍 지났지만, 극장에는 빛이 돌아올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질서를 유지하던 스태프들이 손전등을 들고 분주히 오갔지만, 아쉽게도 이 거대한 공연장에 비해 손전등 몇 개의 빛은 너무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무슨 이유인지 작동하지 않는 예비전원, 그리고 오랜 기다림에 지쳐버린 관객들의 인내심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조용했던 객석에서 항의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암소공포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금 상황은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괜히 돌아다니다 넘어질 것을 우려해 의자에 앉아 불빛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라는 스태프의 지시에 따르기로 했다.
관객들은 스태프들에게 정전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예상보다 긴 어둠이 지속된 탓인지, 사람들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랐음을 느낄 수 있었다.
{character:관중 A}내보내 줘! 집에 보내 줘……
가장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다. 내 옆에 있던 사람은 어둠을 특히 무서워하는 듯했다. 대기 시간이 길어지자 그녀의 멘탈이 버티지 못했고, 결국 큰 소리를 치며 일어섰다. 공연장을 벗어나려는 듯하다.
{character:극장 스태프 B}손님, 예비 전력이 곧 가동될 테니 너무 무서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character:관중 A}나 여기 있기 싫어, 집에 가게 해 줘…… 집에 갈 거라고~!
{character:극장 스태프 B}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손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스태프가 손전등을 흔들며 다가오자 그녀는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출구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녀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나는 그녀의 조급한 발걸음을 미처 피하지 못해, 여러 차례 밟히고 말았다.
{character:player}쓰읍……
{character:아케치 히데키}{var:player_nickname}씨, 괜찮아요?
아파하는 내 신음 소리에, 히데키는 곧바로 휴대전화에 달린 손전등을 켰다. 희미한 불빛 아래, 내 신발 위에 선명하게 찍힌 발자국이 눈에 띈다, 이건 방금 그 사람이 남긴 '걸작'임이 분명하다.
{character:player}하이힐이 아니라서 다행이야, 그랬음 바로 병원행이었겠지.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다치지 않아 다행입니다…… 다음에 또 초대한다면 꼭 희극을 선택할게요.
{character:player}그래. 근데 지금 이 상황, 자칫하면 사람들이 전부 빠져나가버리겠는데.
빠져나가는 사람이 생기자 곧이어 다른 사람들도 극장을 나가기 시작했다. 지속된 정전으로 많은 사람들의 인내심이 바닥났고, 패닉에 빠진 몇몇 관객들에 의해 현장은 순식간에 혼란에 휩싸였다. 조급해하지 말고 자리에 있어 달라는 스태프들의 외침에도, 공연장을 빠져나가려는 이들은 점점 많아졌고, 이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어나 출구를 향하기 시작했다.
발소리, 부딪히는 소리, 휴대전화를 떨어뜨리는 소리…… 갖가지 소리가 뒤섞였다, 극장이 이런 혼란에 휩싸인 것은 창설 이래 처음이다. 다행히 대부분의 관객은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고, 퇴장하면서도 일정한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관객들이 퇴장하는 사이, 예비전원이 들어오며 공연장이 다시 환해졌다.
만석이던 좌석들은 어느새 텅텅 비어버렸고, 비어 있어야 할 통로는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 이런 상황에서 공연을 계속할 수 없을 게 뻔했다.
{character:player}……
다른 사람을 신경 쓸 마음이 사라지자, 나는 히데키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는 혼란에 빠진 관객들과 달리 시종일관 잔잔한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역시 분명 방금 전까지 어둠 속에서 고뇌하고 있었던 만큼, 그 미소는 내게 그가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들게 했다. 그 가면 아래에 감춰진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나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character:극장 안내 방송}관객 여러분, 관람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논의를 거친 결과, 본 극장은 진행 중이던 공연을 취소하기로 결정하였으며, 일주일 내에 새로운 공연 일정을 안내하겠습니다. 만일 새로운 공연 일정과 시간이 맞지 않으실 경우, 극장 매표소에서 환불을 도와드리겠습니다.
{character:극장 안내 방송}이번 정전 사태로 인해 불편을 겪으신 모든 분들께, 극장의 모든 관계자들을 대표해 사과드립니다.
때마침 극장 안내방송이 흘러나오며 떠나려는 관객들에게 극장을 나갈 적절한 구실을 만들어주었다. 무대의 막이 천천히 내려가며 뒷정리에 여념이 없는 배우들의 모습을 가려주었다. 아쉽지만 귀공자와 평민의 로맨스는 다음을 기약해야 할 것 같다.
오늘은 오페라를 볼 운명이 아니었나 보다. 나와 히데키는 하는 수 없이 사람들을 따라 오페라 극장을 떠나야 했다.
{character:player}이대로는 너무 아쉬운데…… 음, 히데키, 우리 이제 어쩌지?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네? 저라면 무슨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하나요?
{character:player}당연하지, 내 직감이 너라면 분명 어떠한 방법이 있을 거라고 말해주고 있다고. 하하, 딱히 근거는 없지만.
나는 어둠 속에서 히데키의 표정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웃음기 섞인 그의 말투로 미루어 보아, 그는 정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즐거운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잠시 후에 직원이 상황을 파악하고자 손전등을 들고 이쪽으로 왔고, 히데키가 직원의 귀에 대고 뭐라고 말을 하자, 그는 뭔가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객석에서 일어난 소음으로 인해 그 대화 내용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character:player}방금 뭐라고 한 거야?
스태프가 떠나고, 나는 히데키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대답을 하는 대신, 씨익 미소만을 지어 보였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곧 알게 될 거예요.
{character:player}응?
{character:배우 B}내 사랑하는 그대여……
공연장에 갑자기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록 주변은 어둠뿐이었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바라봤다…… 무대다! 배우들의 연기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character:player}스태프에게 배우들이 부르던 노래를 계속 부르라고 시킨 거야?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음악은 사람들을 조용하게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이기도 해요. 사실 이 공연장은 처음부터 가장 포괄적인 음향 제어 설계를 채택해 건설됐죠. 누가 어느 위치에 있든 음향설비의 도움 없이도 고르게 소리를 전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이 공간을 디자인한 설계자의 원래 목표였어요.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극장 투자자가 가능한 많은 관객을 수용하도록 하기 위해 강제로 거대 공연장으로 확장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정전 사태는 극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을 거예요. 가수에게 마이크도 필요 없었겠죠.
{character:player}그런 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따로 공부라도 한 거야?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흥미 있는 분야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려는 것은 나쁘지 않죠. 그렇지 않나요?
{character:player}그렇지.
나는 어둠 속에서 히데키의 실루엣만을 겨우 볼 수 있었다. 그가 오른손을 들어 조용히 하라는 사인을 보내오는 듯 보였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쉿…… 다음은 이 연극의 가장 유명한 부분, 남자 배우의 10분에 달하는 솔로예요. 매체에서 '가장 감동적인 시곡'으로 선정되기도 했구요. 오늘 {var:player_nickname}씨가 즐겁게 들어주셨으면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공허한 노랫소리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그를 지키겠다는 다짐을 담고 있었다. 비록 무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홀연 연인이 가둬진 옛 성채에 끌려가 버린 듯한 느낌에 빠졌다.
노래의 리듬과 멜로디, 아름다운 화음, 심지어는 배우의 숨소리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노랫소리를 따라 함께 그리워하고, 슬퍼하며, 기뻐하고, 울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들어 왔다.
노랫소리는 소음을 뚫고 관객들의 고막을 파고들며 그들의 마음을 다독였다. 모든 것이 음악으로 인해 일순 멈춰 버린 것마냥 따듯하고 아름다워진 것 같았다. 이런 게 바로 음악이 가진 신비한 힘이었구나!
{character:배우 B}저는 당신을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당신과 함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제 자신에게 물어도 봤습니다, 내 영혼을 가져간 사람이 천사인지, 아니면 악마인지…… 하지만 전 당신이 평범한 소녀라는 걸 압니다…… 지금 절 이렇게 만든 건… 당신을 향한 제 순수한 사랑입니다……
나는 천사 같은 노랫소리에 이끌려 휴대폰의 손전등 기능으로 무대에 빛을 비추려 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히데키 역시 같은 행동을 취했다. 그는 휴대폰을 든 나의 팔을 보며, 푸른 눈동자에 반달 모양을 띄웠다.
우리 둘의 행동에 주위의 관중들이 하나 둘 동참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휴대전화의 부족한 불빛은 무대 위에 움직이는 희미한 그림자만을 간신히 비출 정도였다.
{character:player}아쉽네…… 정전만 아니었으면 배우들의 몸짓도 볼 수 있었을 텐데.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하지만 이것도 꽤 인상적인 연출 같네요.
{character:player}맞아. 이 부분은 원래 남자 주인공 내면의 갈등을 묘사하는 부분이잖아. 어둠 때문에 더욱 특별한 연출이 된 거 같아.
솔로의 끝부분에 다다르며 남자 주인공은 아버지의 반대에 맞서기로 결심하고, 사랑을 이루기 위한 강한 일념으로 차가운 지하실을 탈출해 그녀의 집으로 달려간다.
두 남녀 주인공이 재회해 서로 손을 맞잡고 듀엣을 하는 순간, 예비전원이 가동되며 화려한 불빛과 아름다운 춤, 그리고 음악이 이 장면에 비할 바 없는 화려함을 더해주었다.
{character:배우 B}솔직히 고백하겠어요, 비록 제 마음이 다른 사람들처럼 고귀하지는 않지만, 제 마음이 사랑하는 것은 오직 당신 뿐입니다.
{character:배우 A}'사랑'이라는 말… 정말로 아름답게 들리네요……
{character:배우 B}저는 당신이라는 굴레에 속박되고 싶습니다! 제 신분이 얼마나 고귀했다 한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야말로, 저에게 가장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character:배우 A}나는 자신에게 수도 없이 물었어요. 당신의 구애에 답했던 그때 무엇을 생각했는지. 미래가 순탄치 않을 걸 알면서도 전 당신의 장미를 받아들였죠…… 말도 안되는 일이죠, 미쳤던 게 분명해요!
{character:배우 B}부디 제 마음을 받아주세요, 내 사랑, 우린 헤어질 수 없는 운명이에요!
{character:배우 A}받아들이겠어요, 내 사랑. 이번 생에는 절대 그대의 손을 놓지 않겠어요……
나는 휴대폰 손전등을 끄고 편하게 공연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아아, 오늘도 남의 아름다운 사랑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하루였구나!
{character:극장 안내 방송}손님 여러분, 예기치 못한 사고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극장 측에서 논의한 결과, 일주일 내로 본 공연을 추가 상연할 예정입니다, 티켓을 구매하신 사이트에서 무료로 예약을 진행할 수 있으며, 만약 스케줄이 안 맞으실 경우 극장 매표소에서 환불을 진행해 드리오니, 매표소에서 환불을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character:극장 방송}마지막으로, 이번 정전사태에 대해 극장 모든 관계자를 대표하여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정전에 의해 받은 안 좋은 경험들은 노래가 준 감동에 씻겨 날아갔고, 3시간의 공연 시간도 훌쩍 지나가 있었다. 나는 오페라 극장을 떠날 때까지 연극에 깊이 빠져들어 있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아직 시간이 이르네요, {var:player_nickname}씨, 뒤에 일정이 없다면 커피 한잔 하실래요? 이번 정전에 대한 사과 차원으로 대접하고 싶네요.
{character:player}풋, 극장이 정전되는 건 누구도 예측할 수 없던 일이야, 네 잘못이라고 할 수 없지, 그렇게 사과할 필요 없어.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어찌 됐든, 제 불찰입니다. 이후에 오늘 일을 추억할 때 정전 사건만 기억하시진 않길 바래요.
히데키는 인상을 쓰며 어떤 난제에라도 부딪힌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히데키는 내가 오늘 일을 어떻게 기억할지 굉장히 신경 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진지한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히데키를 위로하고 싶어졌다.
{character:player}인생은 원래 변화무쌍해서, 뜻밖의 행운과 뜻밖의 불행 중에 어떤 게 먼저 올지는 아무도 몰라. 정전 사태가 우리의 만남에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오페라잖아.
찬바람은 무엇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우리 곁을 지나간다. 눈으로 가득 덮인 상록수 나무의 가지가 마침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기울어졌다. 눈송이가 공중에서 원을 그리며 흩날리거나 수직으로 떨어졌고, 이내 바닥에 우르르 쌓여갔다.
내가 허둥지둥하며 눈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자, 히데키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그렇군요, 그럼 표현을 바꿔 볼게요. 전 {var:player_nickname}씨랑 좀 더 오래 있고 싶은데, 혹시 커피 한 잔 하시겠어요?
{character:player}당연하지, 나도 그럴 생각이었어.
{character:점원}어서 오세요, 주문 도와드릴까요?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늘 먹던 걸로 주세요. {var:player_nickname}씨는요?
{character:player}같은 걸로.
{character:점원}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히데키가 데려온 커피숍은 우아한 빈티지 컨셉의 가게로,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인테리어였다. 눈부신 플로어 창문 앞에는 정성껏 키운 화분이 놓여 있었고, 벽을 비추는 조명이 햇빛과 뒤섞여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character:player}저 점원이 널 아는 것 같던데, 자주 오던 곳이야?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한동안 안 왔어요. 예전엔 마작부 모임이 있으면 커피숍에서 모였었는데, 부원들이 여기 디저트를 정말 좋아했어요.
{character:player}어쩐지, 익숙해 보이더라.
히데키의 선택을 받은 곳의 디저트라면 분명 특색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커피숍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몇 마디 흥얼거렸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잘 부르시네요.
히데키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마디 칭찬을 건넸다.
{character:player}너도 이 노래 들어 봤어?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흠, 최근에 유행하는 노래잖아요. 사람들이 얘기하는 걸 들어 본 적이 있어요.
{character:player}아케치 부장이 유행곡도 들을 줄이야, 좀 의외인걸.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그건…… 흠, 가끔은 듣죠.
히데키는 두 손을 맞잡곤, 손바닥을 아래로 꾹꾹 누르는 동작을 취했다. 나의 광범위한 데이터에 따르면, 이 행동은 많은 사람이 자신이 없을 때 취하는 미세한 반응 중 하나이다.
나는 방금 전에 했던 대화를 돌이켜 봤다. 내가 뭔가를 잘못 말했던가? 사실 히데키는 유행 하는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 건가?
아무래도 대화 주제를 바꿔 봐야겠다. 히데키 같은 귀공자 타입이 콘서트장에서 야광봉을 휘두르며 응원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드니……
{character:player}음, 우리 디저트는 아직인가? 배가 좀 고프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제가 가서 볼게요!
히데키의 얼굴에서는 시종일관 여유로운 미소가 떠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최근 히데키와 자주 어울리면서, 그 미세한 표정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그는 방금, 슬며시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 미소는 마치 보이지 않는 그만의 벽과 같았고, 지금의 나로서는 아직 허물 수 없었다.
아무래도, 히데키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를 보며 천천히 이해해 나가는 방법밖엔 없을 것 같다. 언젠간 히데키도 자신의 호불호에 대해 편히 말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히데키는 분명 유행하는 음악과 관련된 화제에 대해선 서투를 것이다. 하지만 히데키가 나한테 그 사실을 필사적으로 숨기려고 하는 모습에, 난 왠지 모를 장난기가 발동했다. 히데키가 그 사실을 숨길 수 없게 됐을 때 곤란해하는 모습이 보고 싶어졌다.
물론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이것은 히데키에 대해 알 수 있는 매우 드문 기회이기도 했다. 그리고 난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화제를 돌리지 않고 다시 유행하는 곡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
{character:player}히데키, 진짜 이 곡 들어 봤어?
예상 밖의 질문에, 히데키의 미소가 일순간 굳어졌다. 히데키는 눈을 깜빡였으며, 나의 시선을 의식한 뒤 미소를 거둬들이곤 창밖을 바라보았다.
{character:player}음…… 정곡을 찌른 건가?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으음……
커피숍의 음악이 또 다른 곡으로 바뀌었다. 은은한 피아노 소리가 크지 않은 공간을 넘나들며, 시간마저 느리게 만드는 듯했다.
히데키는 이내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을 뗐지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한 듯했다. 히데키가 이렇게까지 난처해하는 모습을 보자,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결국 내가 이 주제를 포기하려고 하자, 히데키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전 그냥, {var:player_nickname}씨랑 거리감이 생기는 게 싫었을 뿐이에요.
{character:player}음?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저희가 같이 여행도 가긴 했었지만, 가장 자주 만나는 곳은 역시 마작부잖아요. 제가 동아리 관리를 잘 하는 편이긴 하니, 이로 인해 {var:player_nickname}씨한테 있어서 '이 사람은 뭐든지 할 줄 안다'는 인상을 줄까 봐 걱정됐어요.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만약 아케치 히데키도 못 하는 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실망하시게 될 것 같았죠…… 심지어 저에 대한 신뢰마저 떨어질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말을 끝내고 난 뒤, 히데키는 고개를 들곤 다시 익숙한 미소를 내비쳤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하지만 괜찮아요, 만약 저의 이런 모습을 보고 싶으신 거라면, 계속 보여드릴 수 있으니까요.
히데키는 그렇게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했지만, 나는 몇 초가 지나고 나서야 그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character:player}나는 지금까지 보여 줬던 완벽한 히데키의 모습보다는, 히데키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싶어.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진짜 저는 그렇게 완벽한 사람이 아닌데, 그래도 괜찮나요?
{character:player}당연하지, 나도 여러가지 단점이 있는걸. 히데키도 내가 그런 모습을 보였다고 해서 거리를 둔 적은 없잖아.
히데키의 맑고 투명한 푸른 눈동자가, 마치 말을 하듯이 반짝였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죄송해요. 저는 유행하는 음악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어요. {var:player_nickname} 씨가 언급한 두루미 밴드나 방금 언급한 그 노래에 대해선…… 사실 들어 본 적이 없었어요.
{character:player}후후. 유행곡이든 클래식이든, 음악이 사람에게 다양한 감정을 전달해 준다는 점에선 다를 게 없지. 단지, 유행하는 음악은 표현이 좀 더 자유분방할 뿐. 혹시 기회가 된다면 내가 나중에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알려줄게.
{character:점원}실례합니다, 주문하신 메인 세트 나왔습니다.
음악에 대한 이야기는 음식을 서빙하러 온 점원에 의해 끝이 났다. 음식을 보니 확실히 허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점원이 가져온 음식에는 커피와 디저트 말고도 뭔가가 하나 더 있는 것 같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이건 뭔가요?
{character:점원}이건 저희 매장과 크레이지 뮤직 페스티벌의 콜라보로 만들어진 마스코트 굿즈인데요, 메인 세트를 주문한 손님분들께 한 개씩 증정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치신 후엔 카운터에서 경품 추첨에 참여하실 수 있는데요, 경품은 1등, 2등, 3등, 참가상이 준비되어 있고, 1등 경품은 페스티벌 티켓 2장이랍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크레이지 뮤직 페스티벌?
{character:점원}야외 뮤직 페스티벌이라고 생각하시면 된답니다. 유명한 밴드나 신인 가수들이 행사 기간 동안 무대를 찾아 공연을 펼칠 예정인데, 유행하는 음악에 대해 알고 싶으시면 페스티벌에 가서 즐겨 보시는 것도 좋은 선택이랍니다. 고객님, 음식 다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감사합니다.
히데키의 시선이 페스티벌 굿즈에 오랜 시간 머물러 있었다. 히데키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들곤 나를 바라보았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그렇다면…… {var:player_nickname} 씨, 혹시 저랑 같이 크레이지 뮤직 페스티벌에 가 주실 수 있나요?
{character:player}풉, 추첨도 안 했으면서 벌써 가기로 결심한 거야? 만약 당첨 안 되면 어떡하려고?
{character:아케치 히데키}1등에 당첨되지 못한다고 해도, 꼭 같이 가고 싶어요. 추첨은 다음에 다시 한번 불러 낼 핑계로 쓸 수 있겠군요. 어쨌든, 둘이 함께하면 당첨 확률도 두 배가 되잖아요.
히데키는 약간 장난기를 섞어서 얘기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로 인해 히데키가 평소의 그 고고한 느낌을 어느 정도 벗어던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 더 친근한 이웃에 가까워진 듯했다.
{character:player}문제없지, 내가 너한테 유행하는 음악의 세계를 알려 줄게.
히데키는 나의 대답을 듣자 또다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 보여 준 미소는 조금 달랐다. 만약 어디가 다른 건지 콕 찝어 말해야 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건 분명, 진심에서 우러나온 미소였다".
아 맞다, 뮤직 페스티벌…… 거기선 정전 같은 일이 일어나진 않겠지?
푸른 들판
인연 Lv.5 오픈
Possible Endings
Scenario Script
Spots 10, Scenes 342, Choices 4, Endings 0
띠리리리―
주말 아침, 알람 시계가 조용했던 집안 공기를 힘차게 울린다. 나는 잠이 덜 깬 상태로 벽에 걸린 달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위에 표시된 빨간 동그라미를 본 뒤, 깜짝 놀라 잠기운이 다 달아나버렸다.
{character:player}맞다. 오늘은 히데키랑 승마장에 가기로 했었지!
내 평소 활동 반경에 승마장은 포함되지 않지만, 그곳을 약속 장소로 잡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마작부 활동이 끝나고 부원들이 모두 떠났을 때였다. 부실 뒷정리를 하고 있는 히데키를 보며, 그를 도와 수기로 작성해 둔 당일의 패보를 찍어 저장해 주기로 했다.
패보를 어떤 기기로 찍으면 좋을지 물어보기도 전에, 히데키는 휴대폰의 잠금을 풀더니 곧바로 내게 건넸다.
{character:player}그냥 준다고? 내가 네 휴대폰 속 비밀을 알게 되는 게 두렵지 않아?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아마 저희 사이에는 비밀이랄 게 없을걸요?
이 상황이 좀 석연찮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듣고 보니…… 왠지 맞는 말 같기도 했다. 이어서 나는 애꿎은 코를 어루만지며 그가 건네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십 분 정도 지났을까, 두껍게 쌓였던 패보를 모두 찍어 저장했다.
{character:player}부장의 업무란, 쉬운 게 아니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이제 곧 끝나요. 힘드실 테니까, 일단 저 옆에 앉아서 좀 쉬고 계세요.
{character:player}하하, 그럴까?
나는 의자에 앉아 방금 전 찍은 사진들을 다시 확인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찍은 사진이 너무 많아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을 슬라이드를 할 뿐이었다. 그러다 무심코 전에 찍힌 사진까지 넘겨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히데키의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던 사진 한 장이 내 눈에 들어왔다.
{character:player}이건……?
사진의 배경은 녹색으로 뒤덮인 풀밭이었고, 그곳에 놓인 시상대 위엔 세 사람이 서 있었다. 사진 속에는 스무 살의 히데키가 주인공이 되어 트로피를 높이 들곤 그다운 무미건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4년 전의 사진이 히데키의 사진첩 속에서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은, 분명 이 사진이 그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히데키가 정리를 마치고 내 옆에 다가오기 전까지, 사진을 바라보며 생각에 푹 빠져 있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흠, 이건 예전에 승마 시합에 나갔을 때의 사진이군요. 그땐 부모님께서 일이 바쁘셔서 시합에 오지 못하셨어요. 코치님께서는 현장의 분위기를 부모님께 꼭 전해드려야 한다면서 사진을 찍어 주셨죠.
{character:player}내가 알기론, 승마 종목은 18세 이상만 참가할 수 있을 텐데……?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대형 국제 시합에는 그런 조건들이 있지만, 이때는 시 단위의 청소년 시합이었거든요. 14세 이상이면 참가할 수 있었죠.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사실 처음 승마를 배운 건 아버지가 시키셔서였는데, 계속 하다 보니까 저도 이 스포츠가 좋아져 버렸어요. 말을 타고 있으면 시간이 항상 빠르게 지나가서, 해가 지고 나서야 훈련이 끝나는 날도 종종 있었죠.
{character:player}그랬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귀공자와 승마'에 대한 설정을 받아들였다.
{character:player}그럼 혹시 지금도 승마를 배우고 있어? 그럼 나도 현장에 가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청소년 시합에서 우승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께서 쓰러지셨는데, 그때부터 아버지께서 제게 주시는 숙제가 부쩍 늘어나 버렸죠. 그래서 훈련할 시간도 대폭 줄어들었구요.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그래서 정말 아쉽긴 했지만, 고민 끝에 결국 승마를 잠시 그만두기로 결정했어요.
{character:player}정말 아쉽네…… 계속 했으면 지금쯤 국가대표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인데.
{character:아케치 히데키}{var:player_nickname} 씨께선 절 높게 평가하고 계시는군요.
그는 멋쩍게 웃어넘겼지만, 난 그의 미소에서 한줄기의 아쉬움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말과 표정에서, 히데키가 예전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듯했다.
자신이 사랑했던 일을 그만두게 된다면 당연히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나는 사진으로 시선을 돌리며, 그에게 감정을 추스를 시간을 주었다.
{character:player}흠, 이 사람은 누구야?
사진 속 히데키의 오른쪽에 서 있는 소년의 잔뜩 일그러진 표정에서 못마땅함을 느끼고 있는 게 느껴졌다. 마치 찡그린 표정의 이모티콘을 보는 듯 감정이 명확히 드러나 있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아, 이 사람은 레빈이라고 해요. 당시 우승 후보 중 한 명이었죠. 자신의 우승을 거의 확신하고 있었는데 점수가 발표된 뒤, 저한테 0.5점 뒤처졌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는 거의 폭주 상태가 됐어요. 코치도 어쩔 줄 몰라 하더라고요.
{character:player}아, 아무래도 그 사람은 '프로 불편러'였나보군.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프로 불편러'요? 하하, {var:player_nickname} 씨는 항상 독특하면서도 상황과 딱 들어맞는 단어를 말씀해주시네요.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하지만 레빈은 그 시합 이후로 코치에게 더 강하게 훈련시켜달라며 적극적으로 나섰고, 말과 교감을 쌓기 위해 마구간에서 지내기까지 했던 모양이에요. 모두 제게서 우승 타이틀을 빼앗아 오기 위해서였겠죠.
{character:player}그래서? 어떻게 됐어?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그 뒤론…… 방금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전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승마를 그만두었고, 시합에도 나가지 못하게 되었죠. 물론 그 뒤로도 레빈을 몇 번인가 우연히 마주친 적은 있지만…… 전 이미 단단히 미움을 산 모양이었어요.
{character:player}널 뛰어넘지 못한 게 계속 마음에 걸렸던 걸까?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표면적으론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히데키는 드물게 내 생각을 부정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금색 머리카락이 아래로 찰랑이며 그의 푸른 눈동자를 가렸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하지만 레빈이 계속 그러는 이유는, 사실은 절 이기지 못한 게 억울해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절 생각해 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character:player}엥?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레빈의 입장에서는, 분명 소질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도중에 포기하게 된 저를 보는 게 안타까웠을 거예요. 다만, 그의 성격상 이런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는 못했던 거겠죠.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결국, 레빈은 사실 승마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는 거로군.
히데키의 진지한 모습에, 난 그가 자신의 '숙적'을 미워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더욱 나아가, 그 상대와 히데키가 다시 만나 친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마저 들기 시작했다.
자신이 이룰 수 없다면, 이 스포츠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다른 이가 본인을 대신하여 최고의 기수가 되어 주는 것도 결코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실로 히데키다운 생각이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전 더 이상 승마를 하지는 않지만, {var:player_nickname} 씨에게 말을 타게 해 주는 건 가능해요.
{character:player}!!!
{character:player}내가 제대로 들은 거 맞지?!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네, 당시에 저랑 같이 우승을 했던 말이 아직 이한시 교외의 승마장에 있어요. 마침 이번 주말에 보러 가려고 했는데, 관심이 있으시다면 함께 가실래요?
{character:player}물론이지, 그럼 그렇게 정한 거다! 꼭 나와야 돼!
회상은 여기까지 하고, 나는 고개를 들어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시침은 현재 7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히데키라면, 분명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있을 것이었다. 때문에 나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길을 재촉하기로 했다.
복잡한 도시 중심과는 달리, 교외는 상당히 적막한 분위기였다. 메케한 자동차 매연도 없이 그저 은은한 초목의 향기만이 풍겨오는 이곳은 상쾌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역시 나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약속 시간보다 30분 이른 시간에 히데키를 승마장 입구에서 마주쳤을 때, 나는 서둘러서 미리 집을 나섰던 자신에게 칭찬을 해 주고 싶었다.
{character:player}히데키, 좋은 아침!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좋은 아침이에요, {var:player_nickname} 씨. 말들의 활동 시간에 맞추려면 이른 시간에 만날 수밖에 없어서요, 혹시라도 부담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네요.
{character:player}이불이랑 이별하는 게 아쉽긴 했지만, 말들이랑 호흡을 맞출 수 있다는 생각에 눈이 확 떠지더라고. 네가 여길 알려 주지 않았더라면, 난 이한시 근처에 이렇게나 큰 승마장이 있다는 사실을 영원히 몰랐을 거야.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이곳은 회원제라, 손님들 사이에서만 추천 형식으로 홍보가 이루어지고 있죠. 시내에서 홍보를 안 하니, {var:player_nickname} 씨께서 모르시는 게 당연해요.
히데키를 따라 안으로 들어서자 눈앞에 펼쳐진 휘황찬란한 로비에 전율이 일었다. 수백 명은 족히 들어갈 넓은 공간에 다채로운 색깔들이 어우려있었고, 곳곳에서 대자연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로비에는 일정 간격으로 정교한 예술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그중 몇 작품은 나도 TV에서 본 적이 있는 것들이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것들의 가격표에 붙어 있던 “0”의 개수가 몇 개였는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로비의 벽에 걸린, 8마리의 준마가 그려져 있는 저 거대한 그림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겠지.
{character:player}이게 바로 뉴스에 나왔던, 10억 코인에 낙찰된 <팔마질주도>인가?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이건 코우시 선생님의 마지막 작품이에요. 선생님은 이 작품을 만든 이후로 활동을 그만두셨죠. 그래서 이 작품을 정말 좋아하거나, 투자하기 위해서 작품을 노리던 수집가들도 정말 많았어요. 하지만 선생님은 그런 모습이 보기 싫으셨던 건지, 결국 이곳에 그림을 넘겨 버렸죠.
{character:player}<팔마질주도>가 여기 걸려 있는 걸 알면, 코우시 선생님도 기뻐하실 거라고 생각해.
아름다운 예술품, 명작 그림, 호화로운 로비…… 이곳을 세우는 데 들어간 액수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란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게다가 이곳에 개인의 말을 케어해 줄 수 있는 사육장까지 보유하고 있다면, 그 비용은 분명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평소 동아리 활동 중에 히데키가 곧잘 간식을 사 주는 모습을 보며 분명 범상치 않은 집안의 자재일 것이라 예상을 하긴 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히데키는 이 모든 것이 익숙해 보였다. 그는 발걸음을 멈추더니 곧 내게 물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이 승마 목장에 처음 오신 걸 테니, 제가 직접 소개해 드릴까요? 아니면 따로 하고 싶은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character:player}난 먼저 네 말을 한번 보고 싶어, 너랑 같이 우승을 했던 그 말 말이야.
그렇다, 히데키가 이곳에 온 목적도 원래는 자신의 말을 보기 위함이었다. 그러자 히데키는 내 요구를 흔쾌히 승낙하며 날 마구간으로 안내해 주었다.
푸릉― 마구간에 도착하자, 안에서 흥분한 듯한 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말은 자신의 주인이 방문했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인지, 미리 인사를 하는 것만 같은 모습을 보였다.
{character:player}아직 히데키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을 텐데, 어떻게 알았지? 말과 기수는 서로 이어져 있기라도 한건가?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하하, 저희가 대화하는 소릴 들은 거죠. 말은 시각보다 소리로 주인을 더 잘 기억해요.
히데키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마구간으로 데려갔다. 마구간은 넓고 깨끗했고, 통풍도 잘 되는 곳이었다. 구유에 담긴 충분한 사료와 말의 발밑에 깔려있는 볏짚을 보니 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신경써서 관리된 말임을 알 수 있었다.
난 시선을 말에게 돌렸다. 말의 모습은 순백의 몸통과, 길게 휘날리는 갈기가 돋보였고, 작은 잡티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균형 잡힌 체형에서 넘치는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새하얀 준마가 히데키와 같이 있는 모습을 보자, 사람들이 '백마 탄 왕자'를 왜 그렇게까지 사랑하는지 것인지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괜찮아요, 이 아이는 순해서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답니다. 더 가까이 와 보세요.
{character:player}고마워, 그냥 좀 놀랐을 뿐이야…… 이 말이 너무 아름다워서 말이지. 내가 본 말 중에 가장 아름다운 말이야!
푸릉― 그러자 말이 갑자기 콧김을 내뿜으며 긴 꼬리를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마치 은색의 섬광이 내 눈앞을 스쳐가는 듯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은백, 그렇게 예의 없이 굴면 안 돼.
히데키가 가볍게 꾸짖자, 말은 고개를 숙이며 갑자기 침울한 모습을 보였다.
{character:player}이름이 '은백'이야? 좋은 이름이네. 흠, 말이 좀 침울해 보이는데, 혹시 내가 뭘 잘못 말하기라도 했나?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아마 '멋있다'가 아니라 '아름답다'라고 말씀하셔서 그런 것 같네요. 은백은 수컷이라서 멋있다는 말을 더 좋아하거든요.
{character:player}어?! 그걸 알아들었다고?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다 큰 말의 지능은 5, 6살 아이와 비슷해서 호기심이 왕성한 데다가, 사람의 행동도 곧잘 따라해요. 그리고 기분이 나쁠 땐 심술도 부리면서 누군가가 달래 주길 바라기도 하죠. 절대 얕봐선 안돼요.
{character:player}미안해 은백, 내가 실수했네. 다시 말할게, 넌 역시 내가 본 말 중에서 가장 멋진 말이야!
{character:월영}쉬쉬――
은백은 쾌활하게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말이 통하지는 않지만, 나는 신기하게도 그 음성의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마치 '그럼 이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문제삼지 않을게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character:player}음, 정말 자존심이 센 녀석이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은백과의 오해를 푸신 모양이네요. 아무래도 {var:player_nickname} 씨와 은백을 가깝게 만들어 줄 교감 프로그램이라도 진행해야 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character:player}빠르게 가까워질 수 있는 행동이라면…… 역시 먹이를 주는 걸까?
나는 순식간에 핵심을 짚어냈다. 난 이치히메의 사육자로서, 이 방법의 효과에 대해서는 이미 그 누구보다도 자신하고 있었다.
내가 관심을 내보이자, 히데키는 사육사에게 은백이 가장 즐겨 먹는 당근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천천히, 너무 빠르게 다가가면 놀라 버려요. 저 건장한 모습에 속지 마세요, 은백은 사실 엄청 겁쟁이거든요.
{character:player}아, 알았어…… 은백아 착하지, 너한테 줄 당근을 가져왔어, 이제 거기로 갈게……
나는 조심스럽게 당근을 은백의 앞으로 가져다 두었고, 은백은 이내 앞으로 와서 냄새를 맡더니 입을 크게 벌리곤 거침없이 당근을 집어삼켰다.
{character:player}천천히 먹어, 아직 많으니까.
{character:사육사}은백이 이렇게나 쉽게 사람을 받아들인다고? 이건…… 말도 안 돼!
{character:player}왜 그러세요?
{character:사육사}은백은 온순한 성격이지만 경계심이 강해서, 낯선 사람이 가져다준 음식이랑 물은 절대 안 먹거든요. 아케치 선생님 말고는 이렇게까지 빠르게 녀석의 신뢰를 얻은 사람은 없었어요.
{character:사육사}제가 처음 녀석의 사육사가 되었을 때에도, 신뢰를 얻기까지 무려 반 년도 넘게 걸렸었죠. 게다가 전 벌써 녀석을 보살핀 지 5년이 넘었는데도, 녀석은 아직도 제가 사료를 섞어 줄 때마다 옆에서 경계하는 눈초리로 쳐다보곤 해요.
사육사는 충격을 받았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끝내 원인을 찾지 못하고 의혹만을 품은 채 이곳을 떠났다.
{character:player}풉, 사육사님께서 충격을 받으신 모양이네. 아무래도 그동안 은백의 신뢰를 얻기까지 엄청 노력해 오셨던 모양이야.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네…… 확실히 그런 것 같네요. 안 그래도 너무 힘들면 다른 사육사분과 교체해도 괜찮다고 제안한 적이 있긴 했었는데, 은백한테 승부욕이 발동하신 모양인지 곧바로 거절하시더군요.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다른 작업자 분들의 얘기를 들어 보니, 사육사님은 은백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아예 한 달 동안 여기서 같이 먹고 자고 했다는 모양이에요. 그렇게까지 하고 나서야 겨우 은백에게 마구간에 접근하는 걸 허락받을 수 있었던 거죠.
{character:player}의지가 강하신 분이네…… 근데 경계심이 그렇게 강한 말인데, 히데키는 어떻게 은백이랑 친해지게 된 거야?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은백은 아버지께서 출장 중에 사들인 망아지였는데, 여러가지 이유로 출장이 끝난 뒤에도 녀석이 태어났던 곳에 그대로 두게 되었어요. 그리고 녀석이 두 살이 되고 나서야, 아버지께서는 은백을 이한시로 데려와 제게 주기로 하셨죠.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그 전까지는 저도 목장에 있는 말을 빌려서 훈련을 했는데, 본격적으로 말을 사육하게 되니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일을 많이 겪었죠. 특히 은백이 이갈이를 할 때가 됐을 땐, 이빨 하나가 안 빠져서 굉장히 고통스러워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땐 수액으로 영양을 공급해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character:player}그 다음엔? 네가 뽑아 줬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알아챈 모양인지, 은백은 머리를 들이밀며 주인에게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하하, 절 너무 만능으로 생각하시네요. 물론 {var:player_nickname} 씨가 원하신다면, 공부해 볼 의향은 있어요.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당시에 고용했던 수의사는 안타깝게도 경험이 부족한 탓에 이를 뽑지 못했어요. 그 탓에 은백은 거의 3개월동안 밥도 제대로 못 먹게 됐고, 결국 아버지께 부탁을 드려 해외에서 교수님을 초청하고 나서야 그 문제를 가까스로 해결할 수 있었죠.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이빨 문제는 은백 같은 순혈마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질환이에요. 다행히도 유치를 뽑아내니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는데, 제가 의사를 찾아줬다는 사실을 알기라도 했는지 그 뒤부터는 절 주인으로 인정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우린 시합 때에도 다른 참가자들보다 호흡이 잘 맞았고, 결과적으로는 우승까지 할 수 있었죠.
{character:player}듣고 보니, 내가 준 음식을 아무런 경계 없이 먹은 게 확실히 신기한 일이긴 하네! 혹시 나한테 어떤 특수한 능력이나 물건이 있어서 녀석의 환심을 살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나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복장을 살펴보며 그 이유를 찾고자 했다. 그러자 히데키는 옆에서 가볍게 웃어 보이더니, 손을 들어 내 행동을 제지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사실 그렇게 이상한 일까지는 아니에요.
{character:player}엥?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혹시 '말은 주인을 닮는다'라는 말을 들어 보셨나요? 만약 주인이 겸허한 인품을 가지고 있다면, 그 말은 규율을 잘 지키는 성격으로 자라겠죠. 하지만 주인이 승부욕이 강한 사람이라면, 그 말도 다른 말들을 괴롭히는 말썽꾸러기가 되고 말 거예요.
{character:player}그럼 은백의 경계심이 심해진 건, 결국 히데키 때문인 거네?
히데키는 내가 자신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자, 한숨을 쉬며 내 귀쪽에 가까이 다가와선 조심스레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그러니까, 은백은 제가 {character:player} 씨를 믿음직하고 중요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처럼, 절 따라서 비슷한 감정을 품게 됐다는 거예요.
하지만 아무리 작은 목소리라 할지라도 역시 말의 청력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은백은 마치 나와 히데키 사이의 비밀을 알아채기라도 했다는 듯 또다시 “쉭쉭”거리기 시작했지만, 히데키가 머리를 살짝 두드리자 다시금 조용해졌다.
그리고 히데키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몸을 돌려선 은백을 돌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돌아선 그의 뒷모습 속에서 빨개진 귓볼을 목격한 나는, 그 모습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character:player}흐흠, 나도 히데키가 믿음직스러워.
이 대답이 히데키의 마음을 가라앉힌 것인지, 그는 곧 내가 알고 있던 익숙한 귀공자의 모습으로 다시 되돌아왔다. 그렇다…… 히데키는 은백과 마찬가지로, 정말 달래기 쉬운 사람인 것 같다.
잔잔한 여름 바람이 볏짚을 헤집은 뒤 마구간을 관통했고, 약간의 더운 공기와 함께 신선한 풀내음이 퍼져나갔다.
{character:player}나도 말 한번 타보고 싶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당연히 타 보셔야죠. 분명 은백도 밖에 나가보고 싶을 거예요.
난 히데키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튀어나와 버린 것을 깨달았다.
{character:player}에? 네 말은…… 은백을 빌려 준다는 거야?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걱정 마세요. 은백도 괜찮을 거예요.
{character:월영}쉬쉬――
은백은 히데키의 말에 회답하듯 제자리걸음을 하며, 고개를 낮춰 얌전히 구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모습을 보니, 나도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히데키와 함께 은백을 마구간 밖으로 데리고 나오기로 했다.
스태프로부터 대형 경기 준비 건으로 경기장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우리는, 이내 다른쪽 훈련장으로 향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고삐를 꽉 잡고 안정적으로 자세를 잡아 보세요. 중심을 잃어선 안 돼요.
{character:월영}쉬쉬――
은백은 신뢰하는 주인의 말에 따라 나를 태우곤 순조롭게 운동장 몇 바퀴를 돌았다. 놀랍게도 나와 은백은 처음 합을 맞춰 본 것임에도 호흡이 굉장히 잘 맞았다. 그리고 히데키는 멀지 않은 곳에서 우리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그래, 이것도 역시 주인이 잘 훈련시킨 덕분일 것이다.
말을 타고 산책을 하는 게 멋있어 보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여름의 햇볕은 꽤 뜨거웠다. 나는 말에서 내린 뒤 은백을 다른 스태프에게 맡기곤 히데키와 함께 로비로 돌아가 시원한 바람을 쐬기로 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var:player_nickname}씨는 승마에 소질이 있네요.
{character:player}그냥 말 타고 몇 바퀴 돌아본 것 뿐인데 뭐……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너무 과소평가 하지 마세요. 제 눈은 꽤 정확하다구요. 은백도 {var:player_nickname}씨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괜찮다면 다음에도 같이 오실래요?
{character:player}당연하지, 나도 은백이 마음에 들어.
{character:player}승마장까지 왔는데 승마 체험을 안 해 보는 건 너무 아쉽겠지?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맞아요. 승마장에는 임시로 대여해 주는 말들이 있으니까, 한번 마음에 드는 말을 골라 보세요.
히데키는 스태프를 불러 간단하게 말을 전했다.
{character:스태프}손님, 죄송합니다만 현재 대형 경기를 준비 중이라 한 달 동안은 경기장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현재 사용 가능한 공간은 훈련장 뿐입니다만, 속도 제한이 있습니다.
{character:player}괜찮아요. 저는 그냥 승마 체험만 해 보고 싶을 뿐이니까요.
{character:스태프}그럼 아무 문제 없겠군요. 손님께서는 어떤 말을 좋아하시나요? 중간 체격의 아슬란 말, 근육이 발달한 상북 말, 체중이 비교적 가벼운 올로프 말 등이 있습니다만, 각각 특징이 있으니 손님께서 직접 둘러보신 뒤 마음에 드는 쪽으로 골라 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말에 대해 잘 모른다는 듯한 티를 내자, 스태프 분께서 말들의 특징을 내게 소개해 주었다. 분명 자세히 설명해 주시기는 했지만, 나는 마치 뇌리에 안개가 낀 듯 제대로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character:player}고르기 어렵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그럼 훈련장에 가서 한번 구경이라도 해 보고 결정해 보는 건 어떨까요? 지금은 마침 말들도 산책할 시간일텐데요.
{character:player}괜찮은 생각인데…… 그래도 될까?
{character:스태프}당연히 괜찮지요. 그럼 두 분, 절 따라오시기 바랍니다.
스태프는 나와 히데키를 데리고 훈련장에 도착했다. 푸른 잔디밭 위의 말들은 뛰어다니거나 유유히 일광욕을 즐기며 각자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character:준마}푸릉~ 푸릉~
말들 사이를 거닐며 그들의 소리를 듣고 있자니, 나조차도 그 무리의 하나가 된 느낌이 들었다.
{character:스태프}손님, 어떤 말이 가장 마음에 드시나요?
{character:player}그건……
타닥 타닥. 고민을 이어가던 찰나, 한 무리의 말들이 조련사의 인도에 따라 내 앞을 지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선두에 있던 백마가 눈에 들어왔다. 다리가 길게 뻗어 있고, 목을 타고 내려온 갈기 또한 밝게 빛나 보였다.
{character:player}결정했어, 바로 이 말로 할게요!
{character:스태프}안목이 뛰어나시군요. 이 녀석은 이곳에서 유일한 금빛 아할 테케 품종입니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피 같은 땀을 흘린다고 하여 '한혈마'라고도 불리죠. 그럼 바로 가서 월영을 데려오겠습니다.
좋은 말을 골랐다고 하니 왠지 안목에 자신이 생긴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의아하게도 히데키는 어딘가 걱정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character:player}히데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어?
{character:아케치 히데키}…… 아니에요. 제가 도와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character:player}……응?
스태프가 말을 데려오고 나서야, 나는 히데키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짙은 파란색의 눈동자는 경멸의 눈빛을 드러내며 힘과 위엄을 뿜어내고 있었다. 역시, 대단한 말들은 성격이 있어 보여서 생각보다 친해지기 어려울 듯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나의 뒤틀린 승부욕 또한 발동했다. 난 오늘 반드시 상대를 정복하여, 나의 탈것으로 만들어 보일 것이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갑자기 낯선 말에게 다가가는 건 굉장히 위험한 행위예요. 먼저 말의 이름을 불러주면서 목소리에 익숙해지도록 만드세요.
말을 데려온 이후로, 히데키는 내곁에 더 가까이 다가와 묵묵히 서있었다. 그는 내게 말을 바꾸라고 하기보다는 내가 인내심 있게 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고, 옆에서 지켜보던 스태프마저 그 세심함에 감탄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맞아요. 바로 이렇게…… 이제 천천히 목을 만져 주세요. 그러면 월영이 긴장을 푸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character:월영}쉬쉬――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긴장하지 마세요, 이건 기뻐하는 소리니까요. 이제 첫 관문은 통과했으니 올라타 보셔도 괜찮을 거예요. 고삐를 쥐고 중심을 잘 잡고 앉아 보세요.
{character:player}알았어.
월영이라는 이름의 한혈마는 아무래도 성질이 있어 보였지만, 순순히 나를 태우고 훈련장을 산책하는 모습을 보니 이 녀석도 역시 어쩔 수 없는 '사회 생활에 찌들은 말'인 모양이었다. 히데키는 나의 안전을 우려해 계속 앞에서 고삐를 붙잡고 있었다.
여름의 햇빛은 결코 친절하지 않다. 말 위에 타고 있는 나조차도 땀이 흐르는데, 앞에서 이끌고 있는 히데키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었다. 나는 레일을 따라 몇 바퀴를 돈 뒤 말에서 내리기로 결정했다. 히데키와 로비로 돌아가 시원한 바람을 쐴 준비를 하자.
{character:아케치 히데키}{var:player_nickname}씨는 승마에 소질이 있네요.
{character:player}그냥 말 타고 몇 바퀴 돌아본 것 뿐인데 뭐……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자신을 과소평가 하지마세요, 제 눈은 꽤 정확하다구요. 괜찮으시면 앞으로도 자주 와 보도록 하죠.
문외한인 내가 아무렇게나 고르는 것보다는, 좋은 말을 고를 줄 아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character:player}히데키, 혹시 나 대신 골라 줄 수 있어?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물론이죠.
나의 도움 요청을 들은 히데키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시원하게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나 또한 그의 선택을 전적으로 믿는다. 이게 바로 마작부 부장에 대한 임시 부원의 절대적인 신뢰 아니겠는가!
스태프의 설명과 자신이 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히데키는 내게 풀을 뜯고 있는 작은 체격의 백마를 골라 주었다.
{character:스태프}백마가 좋으시다면 더 우수한 말들도 있답니다, 손님.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기수로서 말을 고를 때 중요시해야 하는 건, 말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자신에게 잘 맞는 말을 고르는 것이죠.
{character:스태프}알겠습니다. 손님, 그럼 바로 조야백을 데려오겠습니다.
나는 그 말의 모습을 목격하자마자, 곧바로 히데키가 그 말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녀석은 “푸르릉”대며 기뻐하는 소리를 냈고, 이어서 녀석은 내 어깨에 자신의 머리를 얹었다.
{character:player}이건……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이건 말들이 애교를 부리는 거예요. 가볍게 목을 쓰다듬어 주시면 긴장이 풀릴 거예요.
{character:월영}쉬쉬――
백마는 투레질을 하며 명령대로 제자리를 유지했다. 그리고 히데키는 나를 손쉽게 말에 앉힌 뒤, 앞에서 말을 이끌며 잔디밭을 거닐기 시작했다.
여름의 햇빛은 결코 친절하지 않다. 말 위에 타고 있는 나조차도 땀이 흐르는데, 앞에서 이끌고 있는 히데키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었다. 나는 레일을 따라 몇 바퀴를 돈 뒤 말에서 내리기로 결정했다. 히데키와 로비로 돌아가 시원한 바람을 쐴 준비를 하자.
{character:아케치 히데키}{var:player_nickname}씨는 승마에 소질이 있네요.
{character:player}그냥 말 타고 몇 바퀴 돌아본 것 뿐인데 뭐……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자신을 과소평가 하지마세요, 제 눈은 꽤 정확하다구요. 괜찮으시면 앞으로도 자주 와 보도록 하죠.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 칭찬을 해 주는 대상이 높은 기준을 가진 아케치 부장이라면 더더욱 기쁠 것이다. 그렇게 내가 만족감에 빠져 있던 찰나, 갑자기 앞서가던 히데키가 돌연 발걸음을 멈췄다.
{character:player}히데키, 무슨 일이야?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크흠, 아니에요. 그럼 혹시 다른 길로 돌아서 가는 건 어떨까요?
{character:player}음……
갑작스러운 제안에 아무래도 히데키가 무언가를 피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늦은 모양이다. 그가 마주 서 있는 방향을 바라보자, 한 기수가 말을 타고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다그닥 다그닥. 그리고 그가 우리와 부딪히기 바로 직전, 기수는 멋진 기술을 선보이며 안정적으로 우리 앞에 멈춰 섰다.
하지만 문제는, 상대방의 의도가 마냥 좋게만 보이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character:???}이 녀석은 내가 새로 들여온 허스트 온혈마라고 한다. 어제부터 훈련을 시작했지, 이변이 없다면 다음 대회에는 이 녀석과 함께 출전할 생각이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너랑 잘 어울리네.
{character:???}넌 정말 변한 게 하나도 없군, 경기장을 떠나고 기본적인 감성마저 사라진 건가?!
잠깐…… '경기장'이라는 단어에 내 기억 한 켠에 잠들어 있던 정보가 다시 되살아났다. 외모가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알아볼 수 있었다. 이 사람은 바로 사진 속에서 봤던 준우승자 '프로 불편러'였다.
히데키에게 아무런 움직임이 없자, 레빈은 한발 더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의 말투에는 강한 불만이 섞여 있었다.
{character:레빈}승마대회에서 우승까지 했던 녀석이 패배가 두려워 경기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다니, 정말 거기에 안주하려는 거냐?
{character:레빈}너 같은 녀석을 주인으로 만난 말이 불쌍하군.
말이 끝나자, 레빈은 말 머리를 돌려 떠나려 했다.
{character:player}너와 은백이 함께하는 모습을 보고 싶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원하신다면 당연히 보여 드릴 수 있죠.
{character:player}오오!
난 히데키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튀어나와 버린 것을 깨달았다.
{character:player}흐흠, 근데 그럼 네가 너무 귀찮아지는 거 아냐?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승마장에는 전문적인 훈련장이 있어요. 그러니 스태프한테 얘기하면 문제없을 거에요. 사적으로 진행하는 거라 너무 제멋대로 할 순 없으니, 관객분께서는 모쪼록 훈련장에서 잠시 기다리시면서 제가 은백과 함께 준비할 시간을 주셨으면 좋겠네요.
{character:player}후후, 그럼 관객으로서 그 요청을 받아들이죠. 그럼 잠시 뒤에 봅시다!
나는 히데키가 타협 없는 완벽 주의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러한 반응은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그런데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니, 나는 부푼 기대를 품고 훈련장으로 이동해 그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갑자기 뭔가 통하기라도 한 것처럼, 훈련장 스피커에서 BGM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히데키가 은백을 타고 입장하는 모습이 보였다. 마치 백마 탄 왕자가 동화 속에서 튀어 나와 날 향해 다가오는 듯했다.
승마 종목 중 하나인 마장마술은 '승마로 하는 발레'라고도 불린다. 은백은 음악에 맞춰 '파사주', '피루엣', '하프페스', '삐아페'라는 기술을 잇따라 선보였다…… 은백의 움직임은 히데키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우아하다' 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이어서 눈앞의 히데키는 갈수록 말과 하나가 되어,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가 된 모습이었다.
은백은 아름다운 '레그예일드'로 무대를 마무리했고, 훈련장에선 열렬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것은 아케치 히데키와 은백에게 바치는 최대의 찬사였다.
{character:???}칫, 꽤 하는군. 기다려, 나도 금방 우승해 보일 테니!
그리고 나의 등 뒤로 분해하는 듯한 음성이 박수갈채 속에서 불협화음처럼 들려왔다. 말투로 보아 히데키와는 구면인 듯한데,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고자 했다.
하지만 히데키의 마장마술 공연에 이끌려 온 관객이 너무 많아져, 난 그 사람이 누구인지 끝내 찾을 수 없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뭘 찾고 계신가요?
{character:player}으음, 별로 중요한 건 아냐. 아, 히데키. 방금 은백이랑 펼쳤던 공연, 너무 멋졌어!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니까. 아무튼…… 정말 멋진 공연이었어!
그러자 히데키는 나의 칭찬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감사를 표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마음에 드셨다면 됐어요.
{character:player}당연히 좋았지, 누구라도 이런 멋진 공연을 거부할 순 없을 거야.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좋으셨다면 다음에도 {character:player} 씨에게 공연을 보여 드릴게요. 하지만 다음번엔 준비를 확실히 해서, {character:player} 씨만을 위한 공연을 펼쳐 보이겠습니다.
{character:월영}쉬쉬――
눈부신 햇빛과 푸른 잔디밭 위에, 백마를 탄 히데키가 나에게 초대를 보냈다. 이런 달콤한 제안은 아마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물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character:player}그래…… 그럼 약속한 거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며, 은백도 즐거운지 울음소리가 유쾌하게 뻗어나갔다.
햇빛이 참 좋은 날이다.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에서 따뜻함이 느껴진다.
이 말은 히데키의 마음속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것과 같았다. 비록 히데키가 레빈의 말에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의 기분이 좋지 않으리라는 사실 정도는 감지할 수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갑자기 몸을 움직여 떠나려는 기수를 불러 세웠다.
{character:player}기다려 주세요!
{character:레빈}혹시, 뭔가 도와드릴 일이라도 있을까요?
레빈은 히데키 이외의 사람에게는 예의 바른 모습을 보였다. 그는 모자를 벗으며 나에게 흔히 알려진 '기사들의 인사'를 건넸지만, 그것은 끝내 나의 분노를 가라앉히지는 못했다.
{character:player}아케치 히데키에게 사과하세요.
{character:레빈}사과…… 그에게? 친구분, 혹시 그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character:player}방금 당신이 한 말,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나요?
{character:레빈}저는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제가 감히 아케치 가문을 건드릴 수는 없겠지만, 이 일에 관해서는 제 생각을 바꾸고 싶지 않군요.
{character:레빈}말을 사육하는 일이 귀족들만의 유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수의 중도 하차는 기수 본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시합에서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었던 말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레빈은 말 위에 탄 채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림자가 그가 타고 있던 말의 그림자와 겹쳐지며 바닥에 넓은 웅덩이 같은 그림자를 만들어 내었다.
{character:레빈}너의 승낙이라니, 굉장히 이기적인 행위가 아닌가?
“당연히 아니지, 그쪽이 뭘 안다고!”라며 내가 반박하려 하던 와중에… "쿵!" 물건을 옮기고 있던 스태프의 손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화물이 바닥에 떨어지며 큰 소리를 내었다.
여기가 다른 장소였다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겠지만, 승마장에서는 굉장히 큰 실수였다. 이내 훈련장에 흩어져 있던 말들이 놀라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마침 조련사들이 옆에 있었기에 말들이 금세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또 하나의 복병이 남아 있었으니……
{character:레빈}진정해, 저건 널 해치지 않을 거야. 레드 볼트! 저기 봐, 화물들도 이미 다 정리되고 있잖아!
레빈과 그가 새로 들여온 말은 그 모습으로 보아 아직 유대관계를 충분히 형성하지 못한 듯했다. 비록 그는 화물을 가리키며 고삐를 트는 식으로 말의 주의를 분산시키려 하고 있었지만, 효과가 별로 없었는지 '레드 볼트'라고 불리는 적색 말은 계속해서 안정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레빈이 경험이 풍부한 기수가 아니었다면, 상황은 한층 나빴을지도 모른다.
레드 볼트의 지속적인 움직임이 그 긴장 상태를 나타내고 있었다. 상황이 좋지 않아 보였는지, 히데키는 나를 본인의 뒤로 끌어당기며 말발굽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멀리 있던 스태프들도 이곳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현 상황으로선, 우린 그저 그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레드 볼트가 통제를 벗어나는 상황이 생기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character:레드 볼트}푸릉, 푸릉……
띠링~ 띠링~
그런데 긴장이 고조되던 그 순간, 갑자기 어딘가에서 리드미컬한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소리의 근원은 히데키의 휴대폰이었다. 히데키는 점차 휴대폰 볼륨을 키우며 레드 볼트가 충분히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레빈, 리듬에 맞춰.
{character:레빈}……네가 말 안 해도 알아!
그러자 신기한 상황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레드 볼트는 규칙적인 리듬 속에서 서서히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었고, 모든 게 해결되고 난 뒤 히데키는 휴대폰의 음악을 멈추었다.
{character:player}이게…… 무슨 일이야?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그냥 메트로놈을 응용한 휴대폰 어플을 썼을 뿐이에요.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규칙적인 박자는 말의 걸음을 리드미컬하게 만들어 주죠, 이걸 활용하면 기수가 말의 기분을 안정시키게끔 도울 수도 있어요. 그래서 경험이 풍부한 기수들은 만약을 대비해 휴대폰에 이런 어플을 설치해 두곤 한답니다.
{character:player}그랬구나.
{character:레빈}그런 것까지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
레드 볼트는 안정을 되찾고 다시 온순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레빈은 말에서 내려 우리 두 사람 앞으로 다가온 뒤, 복잡한 눈빛으로 히데키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물론이지, 승마는 내 삶의 일부야. 이것만큼은 영원히 잊지 않을 거야.
{character:player}흠, 사실 히데키가 종종 시간을 내서 승마장에 오지 않았다면, 그쪽과 마주칠 일도 없지 않았을까요?
{character:레빈}…………
'프로 불편러'는 사실 꽤 단순한 사람이었다. 지금 레빈의 눈빛에선 이미 처음의 분노는 찾아볼 수 없었고, 그는 현재 모든 상황을 받아들인듯 했다. 그의 마음은 분명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쉽사리 자신의 '숙적'과 화해하려 들지 않았다. 젊은 기수는 고개를 숙이며 오랫동안 쌓아온 마음속의 앙금을 털어내기 시작했다.
{character:레빈}그렇다면 도대체 왜 승마를 포기한 거야…… 내가 전보다 더 분발해가면서 훈련한 건 너랑 다시 승부하기 위해서였어. 하지만 넌 더 이상 시합에 얼굴조차 비추지 않았지……
{character:레빈}게다가 사람들은 항상 날 너와 비교하면서, 우린 서로 다른 존재라는 식으로 떠들어댔었어. 승마 대회 우승 같은 건 네게 있어선 그저 한 줄의 이력에 불과한 일일 뿐이라고 했지……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그렇지 않아.
히데키는 그의 말을 끊으며 한 발자국 다가섰고, 이어서 레빈의 눈을 직시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물론 어떤 사람에겐 승마가 단순히 이력을 빛내 줄 수단에 불과했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었어.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당시에 할머니의 건강에 문제가 생겨 버린 데다, 해야 할 일도 갑자기 많아져서 도저히 승마를 병행할 상황이 아니었을 뿐이야. 이건 나 역시도 정말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고, 코치님이랑 은백에게도 확실히 사과도 했었어.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나도 너랑 다시 결판을 내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결코 내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아. 하지만 레빈, 너한테도 역시 사과는 해야겠네.
{character:레빈}크흠…… 이게 너희 집안의 대화 방식이냐?! 뭐가 이렇게 오글거려!
그는 황급히 한 발짝 물러서며, 과장된 몸짓으로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자 했다.
{character:레빈}흥, 그 뭐냐, 나도 미안하게 됐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응?
{character:레빈}지금까지 내가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아, 확실한 근거도 없이 비웃음을 사게 만들어 버렸으니까 말이야. 앞으로는 그럴 일 없을 거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저번에 은백을 보러 왔을 때, 다음 국제 시합 대표로 네가 출전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었어. 그러니까, 좋은 성적 내길 바랄게.
'프로 불편러'는 히데키와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 아무래도 적응이 안 됐던 것인지, 넋이 나간 모습으로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다물었다 하더니, 결국 몸을 돌려선 레드 볼트를 쓰다듬으러 되돌아갔다.
{character:레빈}난 반드시 우승할 거야, 좋은 소식이나 기다리고 있으라고!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그래.
레빈은 다시 말에 올라타선, 우리에게 달려왔을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반대편을 향해 달려 나갔다.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어 있었다.
{character:player}다행히 잘못을 잘 뉘우치는 타입이었네, 사과에도 성의가 보였고.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모든 사람들이 마음속에 담아 둔 말을 편하게 꺼낼 수 있다면,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지겠죠. {var:player_nickname} 씨, 고마워요.
{character:player}뭐가 고마워?
{character:아케치 히데키}{var:player_nickname} 씨랑 같이 있으면 제가 보호자 역할을 하게 될 줄 알았는데, 이번엔 뜻밖에도 {var:player_nickname} 씨께서 절 위해 나서 주셨네요.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만약 오늘 이곳에 저 혼자 방문했었다면, 아마 레빈과 오해를 풀지는 못했겠죠. {var:player_nickname} 씨가 있었기에 우리의 오해가 풀릴 수 있었던 거예요.
{character:player}흠흠, 그렇게 깊이 생각하고 한 일은 아닌데…… 난 그냥 레빈의 말이 잘못됐다고 생각해서, 그걸 듣고 몸이 먼저 반응해 버렸을 뿐이야.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네, 저도 알아요. 하지만 어찌 됐든, 오늘은 참 즐거운 날이네요.
히데키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하지만 그는 전처럼 나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고, 오히려 나의 눈을 바라보며 내가 본인의 '영역'에 들어서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character:월영}쉬쉬――
어떤 말이 먼저 시작한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훈련장에 있는 말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대로 기쁜 감정을 표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와 히데키는 서로의 반짝이는 두 눈을 바라봤다.
히데키와 이곳에 오기를 정말 잘했다고, 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character:스태프}두 분,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한 손님이 두분께 선물을 남기고 가셨어요.
저번에 마장을 방문한 이후로, 나와 히데키는 한 달에 한 번씩 이곳을 방문해 승마를 즐기기 시작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승마를 끝내고 되돌아가려던 중, 한 스태프가 다가와 우리에게 선물 상자를 전달해 주었다.
{character:player}저희 둘이요? 확실한가요?
승마장에서 히데키 외에 다른 사람과는 특별히 교류한 적이 없었기에, 조금 의아했다.
{character:스태프}맞습니다. 제게 선물을 맡기신 그 손님께서 두 분의 외견을 매우 자세히 묘사해 주셨기 때문에, 절대 잘못 알아봤을 리는 없습니다.
{character:player}그렇군요, 감사합니다……
히데키는 선물을 받아들며 스태프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난 한 발자국 나아가 선물 상자를 열어 보았다. 상자 안에는 서로 색깔이 다른 한 쌍의 승마 모자가 있었다.
높게 솟은 모자에는 약간의 주름도 없이, 챙과 턱끈의 길이도 적절했고, 디자인 또한 심플하면서 우아했다. 이렇게 제대로 된 모자를 고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승마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일 것이다.
{character:player}도대체 누가 선물해 준 걸까?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모자 밑에 편지가 두 장 있네요…… 이건, {var:player_nickname} 씨에게 쓴 편지 같아요.
{character:player}어디 보자……
편지에는 화려한 글씨가 몇 줄 적혀 있었다. "가게를 간 김에 선물을 좀 사봤습니다. 저번 일에 대한 답례를 할까 싶어서요. 하지만 당신의 승마 기술은 형편없으니, 코치를 바꾸는 건 어떨까 싶군요. 예를 들면 곧 세계 대회 우승자가 될 사람이라던가요.
'우승'이라는 두 글자에 이렇게까지 집착을 보일 만한 사람은, 역시 일전에 우연히 만나게 된 '프로 불편러'밖엔 없을 것이다.
{character:player}오해를 풀어 준 것에 대한 보답인 걸까? 안목은 나쁘지 않지만…… 내 승마 기술을 폄하하다니, 여전히 사람 열받게 하는 말투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너무 열내진 말아 주세요, 안 그럼 '불편러'라는 칭호가 옮을지도 모르니까요.
{character:player}흥. 다음에 승마장에서 마주치면, 그 녀석에게 준우승의 감상을 다시 느끼게 만들어 주자고!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음…… 그건 조금 어려울 것 같지만, {var:player_nickname} 씨가 원하신다면 꼭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볼게요.
히데키는 그렇게 말하며 함축적인 의미를 담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숙적이 친구가 되다니, 아마 본인조차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이어서 난 히데키의 허락을 받고선 레빈이 쓴 편지를 마저 펼쳐 보았다. “국제 승마 연맹과 세계 승마 대회의 대표로서, 내겐 이미 새로운 목표로 삼을 만한 더욱 강력한 상대가 생겨났어. 그러니까, 너도 지지 않기를 바란다!”
편지의 끝엔 프로 불편러께서 그려넣은 굉장히 추상적인 그림이 있었다. 히데키에게 파이팅을 외치는 듯하면서도, 자신의 성과를 자랑하는 듯한 느낌의 그림이었다.
쯧. 약간은 뒤틀린 우정인지 싶었다.
난 이에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히데키의 태도로 미루어 보아 지금 히데키는 레빈과 딱히 마찰을 일으키고 싶어 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 일단은 가만히 있기로 했다.
나는 레빈이 떠나길 기다린 뒤, 히데키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를 표했다.
비록 히데키는 레빈의 말 때문에 분노를 표출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았으리란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괜찮아요, {var:player_nickname}씨. 전 이미 익숙해졌으니까요.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레빈은 그저, 제가 승마를 포기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을 뿐인 거예요. 악의는 없을 테니까, 너무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character:player}난 그저…… 그래, 알았어.
히데키가 계속 상대방을 두둔하자, 나는 마음속에 끓어오르던 감정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이후 우리는 그 사람을 다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 작은 트러블은 우리들의 기분을 망쳐 버리기에 충분했다. 때문에 우리는 결국 이번 일정을 조금 일찍 마무리하기로 결정했다.
{character:player}“국제승마연맹, 세계 승마 대회 참가자 명단”……?
캣챗의 알림 타이틀이 내 눈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메시지를 열어 보자, 예상대로 프로 불편러의 고화질 증명사진이 나를 반겼다.
{character:player}“기수 레빈이 국제 승마 대회의 대표로서 참가합니다. 모두 그가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응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음, 레빈은 벌써 이렇게 대단한 기수가 됐구나……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가며 레빈의 약력을 포장했다. 그중 “청소년 시합 준우승”이라는 타이틀이 수많은 우승 기록 사이에서 유독 눈에 들어 왔다.
당시의 준우승자가, 이젠 승마계의 라이징 스타가 되어 있었다. 그처럼 승마를 사랑하던 히데키는 어쩔 수 없이 승마를 포기하게 되었는데 말이다. 난 내심 깊은 한숨을 쉬며, 이 야속한 운명을 한탄했다.
난 히데키가 이 기사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해졌지만, 그건…… 분명 본인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나날
계약 오픈
Possible Endings
Scenario Script
Spots 9, Scenes 360, Choices 3, Endings 0
물은 맑고 산은 푸르러, 창가에 기대 바라보네. 봄바람이 강 너머의 비를 몰라 주니, 비오는 거리의 사람들만 바라보네……
고요하고 차분한 시의 글귀에 이끌려, 이번 주말 나는 이한시에서 멀지 않은 한적한 옛 마을에 찾아왔다. 이곳만의 독특한 경치를 감상할 예정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휴대폰은 파업 상태에 돌입이라도 한듯 모든 수단을 써봐도 작동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곳에 있던 유일한 사람… 길가에 놀고 있던 꼬마에게 길을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꼬마는 내게 '초스피드'지도를 그려 관광지로 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나는…… '초스피드'로 길을 잃었다!
{character:player}여긴…… 어디지?
복잡한 골목길과 전부 비슷해 보이는 하얀 벽, 그리고 검은 기와 지붕이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모든 골목길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큰 길에서 너무 멀어진 탓인지, 주변엔 사람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미 쓸모 없어진 지도를 손에 쥐고는 어디로 가야할지 갈피를 못 잡고 서성일 뿐이었다.
{character:player}일단 왔던 길로 돌아가 보자, 제발 왔던 길 만큼은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character:? ? ?}{var:player_nickname}씨?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곤경에 빠진 내게 그 목소리는 천상의 목소리나 다름없었다.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몸을 돌리자, 내쪽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히데키가 있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정말 {var:player_nickname}씨였네요, 잘못 본 줄 알았는데,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character:player}말하자면…… 길어.
난 이미 꺼져 버린 휴대폰 화면을 흔들어 보이며 길을 잃게 된 경위를 히데키에게 설명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그렇군요. 이곳은 건물들이 전부 비슷해서 처음 온 여행객들은 길을 잃기 쉬워요…… 휴대폰이 먹통이 된 것도 물론 치명적인 문제지만요.
{character:player}히데키도 여행 온 거야? ……아니, 잠깐…… 설마, 너도 길을 잃은 건 아니겠지?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하하, 아니에요, 저는 반 정도는 여기 사람이니까요.
{character:player}엥?!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아케치 가의 본가가 이 마을에 있어요. 그래서 방학 기간엔 항상 이곳에 와서 할머니랑 같이 시간을 보냈죠.
할머니를 언급할 때 히데키의 눈빛은 햇살을 머금은 듯 따듯했다.
예전에 히데키에게 어릴 적 살았던 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히데키가 묘사했던 마을은 마치 수묵화와 같은 느낌이었고, 도시의 번잡함과는 거리가 멀어서 온갖 걱정을 떨칠 수 있을 만한 장소였다.
내가 이런 옛날 마을에 이끌린 이유도, 히데키에게 영향을 받은 부분이 컸다.
{character:player}그게 여기였구나, 정말 놀라운 우연이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옛날 마을을 구경하는 방법은 역시 '현지인'이 가장 잘 알겠죠. 괜찮다면, 이제부터는 제가 가이드해 드려도 될까요?
{character:player}여기에 일이 있어서 온 거 아냐? 방해가 되지 않을까?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아니에요, 시간 나면 들르는 게 습관이 됐을 뿐이죠. 이 마을은 저의 추억들을 품고 있어서 마음의 짐을 덜고 가벼운 마음으로 방학을 보낼 수 있거든요.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거절하지 않으셨으니, 제안을 수락하신 걸로 알게요. 이 다음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character:player}당연히 마을 최고의 핫플레이스를 구경해 봐야지. 관광 명소가 된 이유가 분명히 있을 테니까.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핫플레이스요? 알겠어요.
길을 잃었을 때 도와줄 사람을 만난 것만으로도 행운인데, 이런 옛 마을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히데키를 만나게 되다니 행운이 따로 없다.
그가 있다면 분명 어떤 일이든 순조로울 것이다. 그래서 난 아예 모든 계획에서 손을 떼고 모두 그에게 맡겨 버린 채 즐기기로 했다. 히데키도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빠르게 조용한 골목길을 벗어나 북적북적한 관광지 쪽으로 날 데려갔다.
시에서 묘사한 옛 마을이 우아하고 정적인 느낌이었다면, 눈앞에 펼쳐진 거리는 독특한 시골 분위기에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이었다.
번화한 도시의 빌딩 숲들과 달리, 북적이는 사람들과 즐비한 상점들은 마치 한 세기 전의 풍경을 보는 듯했다. 어떤 사람은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르고, 또 어떤 사람은 눈을 감고 잔잔하게 불어오는 여름 바람을 만끽하고 있었다.
{character:player}음…… 직접 보지 못했다면, 방금 전의 하얀 벽과 검은 기와들로 가득했던 장소가 이런 오색 찬란한 분위기랑 잘 어우러질 줄은 생각도 못했을 거야. 이런 독특한 풍경을 본 것만으로도 벌써 여기에 온 가치가 충분히 느껴져.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하하, 겨우 이 정도로 만족하시는 건가요? {var:player_nickname} 씨는 정말 쉽게 즐거워지는 사람이네요.
{character:player}고단하고 짧은 인생인데 기왕이면 즐겁게 사는 편이 낫지 않겠어?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네, 일리가 있네요. 어쩐지 {var:player_nickname} 씨 옆에 있으면, 저도 모르게 편안해지더라구요.
{character:사람들}잘한다~~!
갑자기 들려온 사람들의 환호 소리로 나와 히데키의 대화는 잠시 중단되었다. 그곳에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묘기를 펼치고 있는 한 노점이 있었는데, 길 가던 꼬마들도 그 모습에 이끌려 아버지의 어깨에 올라타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되는 갈채 소리에 나도 호기심이 생겨 인파를 헤치며 나아갔다.
한참 구경을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의 소매를 힘껏 잡아당기며 길가의 돌계단으로 이끌었다. 그 손길은 붐비는 사람들 속 나를 구해주는 충성스러운 기사의 도움 같이 느껴졌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여기서 보면 더 잘 보일 거예요.
높은 곳에서 넓어진 시야로 바라보니, 붐비는 사람들 너머로 하얀색 은막이 보였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그림자 연극을 하고 있네요, 어쩐지 사람들이 몰린다 했어요.
{character:player}그림자 연극?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네, 민간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 예술이에요. 은막 뒤에 있는 배우들이 사람 모양의 종이를 들고, 그림자를 만들어 음악과 함께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나가죠. 독특한 표현 형식이에요.
{character:player}재밌어 보이네, 근데 왜 이한시에서는 비슷한 공연을 본 적이 없었을까? 잠깐, 저 노래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커다란 덩치의 악덕 지주가 은막에 나타났고, 은막 주인의 특이한 노랫소리가 나의 주의를 사로잡았다.
{character:그림자 극장 주인}아녀자라면 집안에서 그림이나 그리고 수나 놓을 것이지, 학업을 위해 도읍에 갈 생각을 하고 있으니…… 정말 제멋대로구나.
{character:그림자 극장 주인}도읍으로 보내자니, 어찌 아녀자를 먼 길로 내보낼까 싶고…… 보내지 말자 하니, 병세가 깊어질까 근심이 되고…… 여러모로 고민이 되는구만……
지주의 딸은 남자로 위장하여 배움을 위해 집을 나간 뒤, 서당에서 어느 청빈한 동문생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이제 막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였을 때 그녀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서한을 통해 자신에게 이미 배필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 후 딸은 사랑하는 남자를 데리고 귀향하여 뛰어난 말솜씨로 자신의 아버지를 설득해 내고, 두 사람은 결국 수많은 축복 속에서 행복한 결말을 맞게 된다.
눈앞의 종이 인형들은 극장 주인에 의해 생명이 불어 넣어졌고, 모든 동작들은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나는 연극에 심취해 마치 자신이 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져, 극장 주인이 불을 끄고 은막 뒤에서 걸어 나오자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끝없이 쏟아지는 박수갈채가 훌륭한 연극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망설임 없이 박수를 치며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오늘 극장 주인의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character:player}앞에 있는 돈통에 돈이 가득하잖아, 당연히 기분이 좋겠지.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음…… 이 거리가 관광지로 막 개발되었을 때, 저도 이 공연을 보러 온 적이 있거든요. 그때 본 공연도 마침 방금 본 '버드나무 그늘'이라는 희극이었죠.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하지만 그때의 결말은 지금과 달리, 악덕 지주가 강제로 자신이 점찍은 사내와 혼인시키기 위해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이야기였죠. 그리고 그 결과, 그의 딸은 혼례를 치르러 가는 도중에 사랑하는 사람의 묘에 머리를 들이받아 자결했고, 그 둘은 나비가 되어 고향을 떠나가는 결말이었어요.
{character:player}비극적인 결말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 경우엔 해피엔딩이 더 마음에 드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사실 방금 전까진 조금 걱정했어요, 또 비운을 암시하는 비극적 결말이 되는 건 아닐까 싶어서……
히데키는 불안했다는 듯 눈꺼풀을 살짝 드리웠다. 보아하니 저번 일들이 이 청년에게 심적 부담을 많이 안겨 주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밝은 금색 머리가 햇빛을 받아 따뜻한 느낌이었다, 마치……
{character:player}내 앞에서 속마음을 얘기하는 부장이 귀엽달까.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에?
아차, 나도 모르게 속 마음을 말해 버렸다!
{character:player}하하하하…… 아무것도 아냐, 오늘은 비극이 아니라 행복한 결말이니까 좋은 징조라고 생각해.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네, 저도 오늘은 느낌이 좋네요.
기분이 많이 풀어졌는지, 히데키는 나를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나는 그의 부축을 받으며 계단을 내려왔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이제 어디로 갈까요?
{character:player}내가 선택해?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네, {var:player_nickname} 씨 옆에 있으면 좋은 일이 생기는 것 같아서요. 그러니 다음 행선지는 제 행운의 별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림자 연극의 영향인지, 나는 왠지 모르게 극장가 쪽을 향해 발을 옮기고 있었다. 다시 한번 가까운 거리에서 민속 예술을 체험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결국 나의 선택은 옳았다. 장대 다리를 걷고 있는 소녀, 불을 뿜는 소년, 물 위를 걷고 있는 사람…… 지나며 보이는 모든 사람들이 은둔 고수들이었다. 그야말로 '생활 속 달인'이었다.
{character:player}가서 제자로 받아달라고 하면 저 사람들이 받아줄까?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일 분의 무대를 위해 십 년을 연습한다'라고 하잖아요. 다들 어릴 적부터 해 왔을 텐데, 만약 {var:player_nickname} 씨가 지금 제자로 들어간다면 앞으로 십 년 동안은 이 마을에서 못 벗어날 거예요.
{character:player}으음…… 그럼 다시 생각해 볼게.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민속 예술에 흥미가 있는 거라면, 쉬운 것부터 시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character:player}뭔데……?
나는 히데키의 시선을 따라 모퉁이에 있는 노점을 바라보았다. 대단한 기예를 부리는 다른 노점들과 달리 이 노점의 주인은 평범한 복장의 중년 남성이었다. 그는 아무런 호객 행위 없이 그저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부채질을 하거나, 가끔 눈을 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 정도만 하고 있었다.
히데키가 알려 주지 않았다면, 난 아마 그를 여행객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노점과 가까워지면서 은은한 묵향이 나와 히데키를 에워쌌다. 그 후, 테이블 위의 화선지와 잉크를 확인하고 나서야 이곳의 특별함을 알 수 있었다.
{character:player}즉석 작화? 음, 디지털로 창작하는 시대에 이런 형식은 확실히 드물지.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작화'라고 표현해도 틀리진 않겠지만, 정확히는 '취화'라고 말하는 게 맞겠죠.
{character:노점 주인}오, 아직도 그런 걸 아는 젊은이가 있을 줄 몰랐네.
점주는 누워 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허리를 쭉 펴더니, 직접 제작한 담배를 꺼내 물고선 우리 앞으로 슬금 다가왔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청운도관의 작가님이시죠? 저희 할머니께서 도관의 작품들을 좋아하세요. 매년 집에 돌아올 때마다 '청운'이라고 적혀 있는 취화가 걸려 있었거든요.
{character:노점 주인}어쩐지 잘 안다 했네.
{character:player}청운도관? 관광지 입구에 있던 안내판에서 봤던 것 같아. 각자 고유의 화풍을 가진 작가들이 모여 있다고 하던데.
{character:노점 주인}지나치게 고상한 홍보 방식이야. 그냥 말 그대로 이해하면 돼, 취화 라는 건 먹물이나 염료를 종이에 떨어뜨려서 입으로 불어가며 완성해 나가는 그림이지.
{character:player}펜이 필요 없는 그림인가……
{character:노점 주인}조상들은 돌멩이로 벽에 그림을 그리고, 또 양손에 도료를 묻혀 가며 그리기도 했으니…… 그림을 완성하는 데 펜이 필수인 건 아니지.
나와 히데키가 취화에 흥미를 보이자, 노점 주인은 우리를 위해 즉석 그림을 선보여 주기로 했다.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고 하니 게을러 보이던 느낌은 온데간데 없고, 눈빛마저도 변한 것만 같았다.
흐르는 염료가 마치 명령이라도 받은듯 사방으로 각자 뻗어나간다. 그리고 입바람의 세기에 따라 자유롭게 흐르며 마침내 신비한 그림이 완성되었다.
{character:player}일단 보기에는 어려울 것 같진 않은데……
{character:노점 주인}하하, 이 기술은 원래 어렵진 않아. 자네들도 직접 만들어서 선물해 보는 게 어때? 내 할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아니, 내 지갑을 걸고 보장하지. 정말 의미 있는 선물이 될 거야.
{character:player}지금이요? 음, 그림은 세모나 네모 같은 것부터 시작하는 거 아닌가요?
{character:노점 주인}스스로에게 꽤나 엄격하구만. 하지만 창작은 원래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거야. 형태를 완벽하게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보는 사람에게 의도를 전달할 수만 있다면 그게 바로 좋은 그림인 거지.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저희 둘 다 이런 창작은 처음이라서요,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character:노점 주인}그럼그럼.
{character:노점 주인}불어, 불어, 계속 불어…… 이쪽으로! 좋았어, 자 어때? 참 쉽지?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바람을 너무 불어댄 탓에 숨이 찼다. 다행히 노점 주인의 밀착 지도 덕분에 간단한 매화도를 어렵사리 완성시킬 수 있었다.
{character:player}앞에 했던 말 취소. 취화 만드는 거,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잖아!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첫 도전으로 작품 하나를 완성한 것만 해도 대단한 거죠, 연습하다 보면 금방 늘 거예요.
수업을 끝내고 의자에 드러 누운 노점 주인을 보며 나에게 취화를 가르치는 게 꽤 힘든 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반해 방금 막 그림을 완성시킨 히데키는 내 작품을 열심히 관찰하고 있었고, 부족한 부분을 짚어 주기까지 했다. 그렇게 꺼져가던 나의 자신감은 다시 차오르기 시작했다.
{character:player}흠, 노점 주인이 너처럼 부드럽게 가르쳐 줬다면 더 잘 해낼 수 있었을 텐데…… 미안하게 됐네, 노점 주인이 날 가르치느라 너한테는 신경도 못 썼잖아.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괜찮아요, 옆에서 들으면서 많이 배웠어요. 예술가들은 다들 성질이 좀 있다고들 하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해해야죠.
{character:노점 주인}어이, 다 듣고 있거든!
화가 난 노점 주인을 바라보며, 나의 '사회 활동 스킬'이 발동했다, 곧이어 나는 칭찬를 연발하며 민속 예술에 대한 존경을 전했다.
{character:노점 주인}됐거든. 입 발린 소리보다, 다음에 더 좋은 그림을 만드는 게 훨씬 좋겠네. 근데…… 이쪽 그림은 상당히 괜찮은데, 안 가져갈 건가?
노점 주인은 다른 탁자에 놓인 히데키의 그림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히데키의 그림을 보지 못했었다.
{character:player}맞다, 나도 보여 줘.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아니, 그건……
나는 재빨리 그의 테이블 앞으로 가서 놓여 있던 그림을 보았다. 순백의 화선지 위에, 미소를 머금은 사람의 모습이 먹물의 흔적을 따라 그려져 있었다. 추상적인 그림 같았지만 한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건 바로…… 나였다!
내가 그림을 확인하자, 내 옆에 바짝 붙어있던 히데키는 긴장하는 듯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죄송해요, 한참을 그리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크흠, 이미 거의 다 그려 버렸더라구요.
{character:player}네 마음속의 나는 이런 모습이구나.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음…… 그런 건 아니에요, 그림 실력이 부족해서 {var:player_nickname} 씨의 장점을 천분의 일만큼도 표현하지 못했어요.
{character:player}이미 훌륭한걸, 엄청 마음에 들어. 혹시 괜찮으면 나한테 줄 수 있을까?
길 양쪽에서 무성하게 뻗어 나온 나뭇잎들은 행인들의 우산이 되어 주었고, 사람들 사이로 퍼져 있던 산뜻한 회화나무의 향기가 따뜻한 바람에 실려 이곳에 흩날렸다. 히데키는 잠시 멍해져 있다가 곧 입꼬리에 보기 좋은 곡선을 만들어 내었다.
그는 곧바로 자신이 만든 취화를 내 앞으로 가져왔다. 그의 푸른 눈동자에 나의 모습이 비쳐 보인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당연하죠, 다음엔 더 좋은 작품을 만들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그때 새로 만든 작품으로 지금 이 부족한 작품을 교체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부장의 완벽주의가 발동했다! 그래도 이번엔 뭔가 달랐다. 그의 눈에는 완벽한 그림에 대한 집착보다는 기대감이 더 많이 비쳤다, 그것은 분명, 성장에 대한 기대감일 것이다.
{character:player}좋아.
{character:노점 주인}그럼 서비스의 의미로 액자까지 만들어서 보내주도록 하지. 주소만 남겨 주면 며칠 뒤에 액자로 만든 그림을 받아 볼 수 있을 거야. 앞으로도 서로 든든한 사이로 함께 나아가길 바라네!
{character:player}염료하고 종이에다가, 액자까지 줘 버리면 뭐가 남아요?
{character:노점 주인}하하, 여기서 노점을 하는 이유는 그림을 팔려는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취화를 알리려는 취지야. 이런 예술이 있다는 사실을 잊히지 않게 하려는 것 뿐이지.
{character:노점 주인}젊은 양반. 사양하지 말고, 그냥 내가 할머니께 드리는 선물 정도로 생각해. 도관이 아직 유지될 수 있는 것도 어르신들이 잘 봐 주신 덕분이니까, 할머니께 인사도 전해 드리고.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감사합니다…… 할머니께서도 이미 알고 계실 거예요.
취화 노점과 작별한 뒤, 나와 히데키는 텅 빈 속을 달래기 위해 식당가로 향해 '폭풍 흡입'을 시작했다. 장시간 돌아다니며 체력이 고갈된 나는 충분히 먹고 마신 뒤 길가에 있는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여행을 와서 현지 음식을 맛보지 않을 수는 없는 법! 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히데키를 이끌고 식당가로 향했다.
계란, 전분, 설탕과 물 같은 평범한 식재료가 노점상 주인의 손을 거치며 황금빛 전병으로 탄생했다. 달콤한 향기가 코를 자극하며 내 식욕을 일깨운다.
{character:player}'삼부점'? 이건 무슨 뜻이지…?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하하, 이 음식의 이름이에요. '삼부점'은 세 가지에 달라붙지 않는다는 뜻인데요, 접시와 식기, 그리고 치아에 달라붙지 않는다고 해요.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전해지는 얘기로는, 오래 전 어떤 왕이 이곳에 놀러 나왔다가 현지 관리의 집에서 이 음식을 대접받았는데, 훌륭한 맛과 식감으로 '삼부점'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고, 그게 수라상에도 올랐다고 하죠.
{character:player}수라상에도 올랐다고? 그럼 꼭 먹어 봐야겠네! 응? 이건 무슨 냄새지…… 뭔가…… 짠 비린내가 나는데?
한 단어로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처음에는 약간 매콤하면서 비린 생선 냄새가 느껴졌는데, 끝에는 고소한 향도 느껴졌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음…… 이건 생선탕수 냄새네요.
{character:player}이것도 지역 특색 요리야?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네, 물고기를 염지한 다음 씻어서 말리고, 마지막에 소스를 넣어 바삭하게 튀겨 낸 요리죠. 냄새는 좀 유별날지 몰라도 식감이 정말 좋고, 독특한 풍미를 가진 음식이에요.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옛날엔 어부들이 물고기를 신선한 상태로 내륙에 들여오기 위해 연한 소금물을 뿌려 부패를 방지했었는데, 이 음식도 거기서 시작되었죠.
어느 가게를 가던지 히데키는 모든 음식에 대해 상세히 꿰고 있었다. 그 음식의 제조법에서부터 유래된 이야기까지, 마치 대단한 요리 해설가 같았다.
평범한 손님이 음식을 이 정도까지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다시 한번 히데키가 말해주는 현지 음식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질문을 던졌다.
{character:player}히데키, 그런 것까지 알고 있는 거야?!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크흠, 사실은……
{character:할아버지}아이고, 이거 아케치네 귀염둥이 아니냐?
히데키의 대답을 들으려던 찰나 가게 옆에 갑자기 나타난 할아버지가 그의 말을 끊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히데키의 어깨를 두드리며 방금 구워 낸 꼬치 두 개를 건넸다.
{character:할아버지}네 친구냐? 자자, 이 할아버지가 사 주는 간식이다. 어렵게 왔는데, 많이 먹어야지!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할아버지, 제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매년 같은 말만 하시네요…… {var:player_nickname} 씨, 이분은 저희 본가 옆에 이웃으로 계시는 할아버지세요. 분식집 사장님이신데, 최고의 요리 솜씨를 가지셨죠.
{character:할아버지}하하하, 뭐가 '최고의 요리 솜씨'냐. 분식집도 너희 귀염둥이 같은 녀석들 덕분에 잘 된 거지.
{character:player}귀염둥이……?
{character:할아버지}히데키 말이야. 가만히 내버려 두면 사고만 치는 우리 집 골치랑은 다르게, 히데키는 정말 착하지. 보기만 해도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 그래서 내가 '귀염둥이'라는 별명을 지어 줬어.
{character:할아버지}이 할배가 정확히 기억한다, 요만할 때였지. 네가 할머니 심부름으로 찾아왔었는데, 글쎄 카운터에 몸이 딱 가려져서 목소리만 들리고 그러니까, 나는 대낮에 무슨 귀신이라도 나타난 줄 알았지 뭐냐.
{character:player}하하하, 그런 재밌는 일이 있었군요.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크흠, 어릴 적 일입니다…… 할아버지, 장사에 방해되겠어요, 이따 제가 할아버지 집에 따로 인사 드리러 가겠습니다.
{character:할아버지}우리 귀염둥이가 노인네 신경도 써 주는구나. 오늘 여기에 특별한 공연이 있다고 하던데, 친구도 데리고 가서 구경해.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가 나오자, 히데키는 다급히 이야기를 차단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그러려니 하며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손을 휘젓곤 우리에게 다음 행선지를 추천해 주셨다.
히데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우리가 떠나려 하자, 할아버지가 내게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character:할아버지}우리 귀염둥이, 일부러 저러는 거야, 자네한테 어릴 적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말이지. 하하하.
{character:할아버지}며칠 전에 우리 귀염둥이가 나한테 찾아와선 이쪽 음식에 대해 알려 달라고 했었거든. 그래서 나는 요녀석이 아무래도 중요한 사람을 데려오려나보다 하고 한 번에 눈치챘었는데, 그 사람이 자네였구먼.
{character:할아버지}하하, 본인은 잘 감췄다고 생각하겠지만, 오래 지내다 보면 겉으로만 봐도 다 보여.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흠흠, 할아버지, 이제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하니까 다음에 다시 얘기해요.
할아버지의 귓속말은 전혀 비밀스럽지 않았는지, 나는 히데키의 얼굴이 귀에서 볼까지 빨갛게 달아오른 모습을 그대로 목격했다. 그러자 그는 나를 붙잡곤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나며 뒤에서 멀어지는 할아버지의 호쾌한 웃음소리를 애써 외면했다.
식당가를 벗어나 극장가로 향하던 도중, 나와 히데키는 침묵 상태로 그림자 절반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저는……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저는……
내가 입을 열자, 동시에 히데키 역시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우리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 웃음을 터뜨렸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할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은 마음에 두지 마세요.
{character:player}어째서?
{character:아케치 히데키}{var:player_nickname} 씨한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요, 오늘은… 그냥 즐겁게 여행했으면 좋겠어요.
{character:player}응, 충분히 즐거운걸. 근데…… 할아버지 말로는 네가 중요한 사람을 위해서 무슨 준비를 했다던데, 설마 그게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나는 아니겠지~?
나는 일부러 말을 길게 늘어뜨렸다. 그러자 역시 방금 전처럼 히데키의 얼굴이 다시금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 마을은 확실히 그의 마음이 쉽게 허물어지는 공간인 것 같다. 그래도 이한시로 돌아가면 다시 속을 알 수 없는 귀공자가 돼 버릴 게 뻔했기에, 부장이 이렇게 귀여운 모습일 때 제대로 '괴롭혀'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어째서 예전엔 {var:player_nickname} 씨한테 이렇게 사악한 면이 있는 줄 몰랐을까요, 이번 여행은 서로에게 정말 '아깝지 않은' 여행인 것 같네요. 서로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으니까요.
여름날 오후의 태양에 달궈진 미풍이 두 사람 사이에 열기를 더했다. 그것이 히데키를 일깨운 것인지, 그는 주먹을 쥐고 입에 가져다 대며 가벼운 기침 소리를 내었다. 빨개진 얼굴을 더 이상 나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확실히 {var:player_nickname} 씨를 초대하려고 했었죠, 근데 어쩌다 보니 예상보다 일찍 만나게 돼 버렸고…… 그래서 제가 생각했던 만큼 준비가 충분히 되질 않았어요.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다음에 준비가 제대로 되면 다시 한번 초대를 할 테니까, 혹시 그때도 와 주시겠어요?
{character:player}좋아.
히데키가 이끌어 준 덕분에 우리는 금세 극장가로 들어섰다. 다양한 민속 예술들이 나의 시선을 끌었지만, 장시간 걸은 탓인지 체력이 바닥나 길가에 있던 벤치에서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character:player}드디어 좀 쉬는구나! 후, 노는 것도 정말 일이야…… 여기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부럽다, 매일 이런저런 재밌는 구경도 하고.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그렇죠, 옛 마을에 이런 북적한 거리가 생기다니.
{character:player}그 말은 뭔가 이상한걸…… 여긴 원래 네가 살았던 마을 아냐? 왜 나처럼 여기가 생소하다는 듯이 말하는 거야?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음…… 저도 나이를 먹으면서 이곳에 돌아오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고, 결국 이곳이 변화하는 모습을 볼 기회를 놓쳐 버리고 말았어요.
히데키는 그런 말을 하며 앞에 있는 명소를 가리켰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사실 제가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 거리는 아무도 눈길을 안 주는 흙길일 뿐이었어요, 포장도 전혀 안 되어 있었고,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커다란 흙먼지만 날렸죠.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그리고 그 시절 길가에 있던 회화나무 밑에는 마작판을 펼쳐 대전 상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자리를 못 구한 사람들은 옆에 서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거나, 건너편 가게에서 의자를 빌려와 관전을 하곤 했죠.
{character:player}정겨운 장면이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그렇죠, 그래서 처음엔 마을 개발에도 차질이 있었어요. 모두 그런 평온한 날들이 사라져 버릴까 봐, 그리고 혹시라도 마을의 질서가 어지럽혀지지는 않을까 걱정했었죠.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하지만 세상은 빠르게 발전하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만 할 때도 있어요. 바로 이 마을처럼요. 이곳도 이미, 제 기억 속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으니까요.
거리 입구 쪽에는 커다란 안내 전광판에는 지도가 띄워져 있었다. 그곳에 있던 옛날의 그 낡은 마작판들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히데키는 번화한 거리를 바라보며 감회가 새로운 듯하면서도, 그 모습들을 통해 옛날의 추억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character:player}옛 마을이 어떻게 변하든, 한 가지는 확실해. 네 즐거웠던 추억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거야. 이 마을에 고층 빌딩이 들어서더라도, 네가 처음의 모습을 기억하고만 있다면, 이곳은 네게 영원히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마을로 남아 있을 거야.
{character:player}아름답고 평온했던 따뜻한 과거, 그건 오직 너만의 것이야. 아케치 히데키만의 추억.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나만의 추억……
히데키는 나의 말을 듣곤, 낮은 목소리로 다시 한번 되뇌었다. 그러자 그의 눈빛이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맞아요. 제게는 이미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이 많이 있으니까, 과거에 집착할 순 없어요.
{character:player}응, 우리가 즐거운 추억을 계속 만들어 간다면, 언제 과거를 돌아보든 늘 아름다운 장면을 떠올릴 수 있을 거야.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그럼…… 옛 마을의 유일한 마작관으로 가서 한번 사투를 벌여 보죠!
{character:player}엥? 갑자기……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저는 {var:player_nickname} 씨도 이 마을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어요, 마작은 {var:player_nickname} 씨에게 가장 직접적인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오락이잖아요.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마을의 작사들을 얕보지 마세요, 잠깐만 방심해도 점수를 따일 테니까요.
{character:player}그런 도발이 진짜 나한테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맞아! 가자, 마작관으로~~ 후훗! 전력으로 상대해 주겠어!
훗날 이 마을에 대해 다시 회상할 때, 나는 히데키의 미소와, 마작 테이블에서 보기 힘들다는 그 순정구련보등을 떠올리게 되었다.
히데키의 말처럼, 우린 둘도 없는 자신만의 추억을 간직했다.
{character:player}음…… 갑자기 그렇게 물어보니, 나도 방법이 떠오르질 않네. 훌륭한 가이드 히데키가 앞으로의 일정을 계획해 줄 수 있을까?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당연하죠. 잠시만요…… {var:player_nickname} 씨가 좋아할 만한 곳이라면……
귓가에 새의 지저귐이 들려왔다. 맑은 지저귐이 진흙의 방향과 뒤섞여 공기 중에 울려 퍼졌고, 히데키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미소를 띠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저를 따라오세요. 한 곳이 떠올랐는데, 분명 마음에 드실 거예요.
나는 히데키가 새롭게 개발된 관광 구역에 날 데려다줄 줄 알았지만, 도착한 곳은 뜻밖에도 인적이 드문 오래된 골목이었다.
골목은 넓지 않았고, 청석판으로 포장된 도로에선 세월의 흔적이 엿보였다. 바람은 선선하게 불어오며 청석길 위에 떨어진 꽃잎들을 흩날렸다. 꽃향기가 더욱 먼 곳을 향해 퍼져 나갔다.
오리를 쫓는 아이, 자상한 어르신들, 이제 집에 돌아가야한다며 아이를 달래는 부모…… 오래된 골목은 외지인에 대해 거부감을 품기는 커녕, 오히려 대범하게 품어 주었다. 이런 점이 명승지와는 다른 옛 골목 특유의 번화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앞에서 걷고 있던 히데키는 이곳에 대해 잘 아는 듯, 때때로 나에게 흔들리는 돌판들을 조심하라고 일러 주었다.
{character:player}히데키는 여기 자주 오나 봐?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네…… 그렇다고 할 수 있죠. 할머니가 원하셔서, 매번 고향집에 돌아올 때면 골목 입구에서 내린 다음, 이 골목을 가로질러 할머니를 찾아왔어요. 어떨 때는 물건이 너무 많아서 중간에 몇 번씩 쉬어가는 경우도 있었죠.
{character:player}골목을 좀 더 넓히면 좋을 텐데. 그럼 차도 들어올 수 있고, 너도 고생 안 해도 되잖아.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저는 반대로, 그냥 이대로가 좋아요.
{character:player}엥? 어째서?
{character:이웃 A}아케치네 아이구나? 방학 했니?
정겨운 인사 소리가 우리의 대화를 중단시켰다. 히데키는 나에게 미안하다는 눈짓을 하곤, 고개를 돌려 예의 바른 태도로 이웃에게 인사를 건넸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네, 이번엔 조금 오래 있을 예정이에요.
{character:이웃 A}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이 아저씨를 찾아오거라, 사양하지 말고.
{character:이웃 B}히데키. 방금 딴 과일인데, 가져가서 맛 좀 보렴.
{character:이웃 C}이건 집에서 심은 해바라기 씨야, 분명 마음에 들 거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감사합니다……
나는 히데키의 뒤를 따르며, 방관자의 시선으로 그를 환영하는 이웃들을 바라보았다. 모든 사람들이 선의를 베풀고 있었고, 난 그들의 정겨운 인사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히데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이 골목에 존재하는 히데키는 마작부의 부장이 아닌, 그저 어른들이 아끼는 한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죄송합니다, 시간이 좀 걸렸네요.
{character:player}괜찮아, 네가……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아. 누구도 이런 정겨운 동네를 거부할 순 없을 거야.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맞아요. 근데 전 사실 이 골목 자체가 좋다기 보다는, 이 골목의 이웃들이 좋은 거랍니다…… 아, 도착했네요.
히데키와 나는 커다란 대문 앞에 멈춰 섰다. 벽에는 정교한 꽃들이 각인되어 있었고, 뾰족하게 솟은 대문의 꼭대기에는 청록색 호랑이가 붙어 있었다. 위엄이 풍기면서도 어딘가 따듯함이 느껴졌다.
{character:player}여기는……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이미 아시겠지만, 이곳이 바로 목적지인 아케치 가의 본가입니다.
{character:player}!!!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옛 마을의 가장 큰 매력은 독특한 건축물들이 아니라, 이곳 특유의 느긋한 생활 방식이죠. 그래서 전 이곳에서 {var:player_nickname}씨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그 매력을 느낄 수 있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할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신 뒤로 아버지는 이곳에 온 적이 없으세요. 본가엔 이제 저 혼자만 살고 있으니, 방해될 거란 염려는 안 하셔도 괜찮아요.
히데키가 대문을 열자, 고풍스러운 정원이 시야에 들어왔다. 정자, 연못, 푸른 소나무가 서로 어우러져 있고, 각양각색의 유리 기와로 장식된 백옥 난간이 고풍스러운 멋을 한껏 끌어올려 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구석에는 덩굴과 잎으로 뒤덮인 퍼걸러가 있었으며, 아기자기한 모양의 우물이 정원을 더욱 정겹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히데키의 할머니는 분명 생활에 대한 열의가 가득했던 분이 틀림없다.
{character:player}오랫동안 비워진 집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걸……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제가 매년 일정 기간마다 와서 묵고 있어서 그래요, 항상 사람을 써서 관리하고 있죠.
이곳이 히데키가 어릴 적 생활했던 곳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가까이서 관찰하고 싶어졌다. 발걸음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아가기 시작했다……
정원에서 가장 나의 시선을 끌었던 것은 구석에 있던 포도덩굴이었다. 물론 장시간을 걸어온 탓에 목이 말라 과일이 먹고 싶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직감이 말해 주고 있다, 이 포도넝쿨에는 분명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
나는 포도 넝쿨 밑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희미한 약초와 과일의 달콤한 향이 코를 자극하자, 난 어느새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쉬게 되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지금은 포도가 익을 무렵이죠, 맛 좀 보시겠어요?
{character:player}그래도 괜찮아?
히데키는 내 질문에 행동으로 대답했다. 그는 곧장 포도 한 송이를 따 우물에서 헹궈 낸 뒤 접시에 담아 내게 가져다주었다. 접시에 담긴 포도는 한 알 한 알이 먹음직스러웠고, 자색 껍질이 은은한 녹색을 띠며 빨리 한 입 맛보라는 듯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한 알을 따서 입에 넣자 새콤달콤한 과즙이 터져 나오며 입안을 적셨고, 산뜻한 포도의 향기와 부드러운 과육이 혀끝에서 녹아내리며 여름 더위를 날려 주었다.
{character:player}달콤해……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이건 할머니께서 직접 고르신 품종이에요, 가장 단 포도 품종으로 고르셨죠. 재배하면서 제가 실수로 잎을 하나 밟은 적이 있는데, 그것만으로도 할머니께서 한동안 속상해 하실 정도였어요.
{character:player}네가 직접 재배한 거야? 오오, 정말 흥미로운걸. 하지만 네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땀 흘려가며 흙을 파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드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확실히 고생이었죠. 흙을 나르는 것만 수십 번이었고, 재배하고 나서도 메우고 다지고…… 하지만 그때 온 신경은 '나만의 포도 덩굴이 곧 생긴다'는 꿈에 집중되서 힘든 줄도 몰랐어요.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하지만 만약 그때 이 포도 덩굴이 시원한 그늘이 될 뿐만 아니라 공포의 무대가 될 줄 알았다면, 그다지 적극적이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네요.
{character:player}무대? 포도 덩굴? 알아듣기 힘든 이야기인걸……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정확히는, 할머니만의 무대였죠.
포도 덩굴은 햇빛을 향해 뻗어 있었고, 가지와 잎이 벤치보다 한 뼘 더 뻗어나와 녹음을 이뤘다. 히데키는 내 옆에 앉았고, 빛은 덩굴 사이의 작은 틈을 통과해 그의 옷에 빛의 얼룩을 만들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더운 여름에 이 포도 덩굴은 햇빛을 막아 주는 영웅이 되지만, 해가 지면 결국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내요.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덩굴은 달빛마저 가려서 벤치 주변을 더 어둡게 만들죠. 밤바람이 몰아치면 포도 덩굴이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마치 내 뒤에 누군가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요……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할머니는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선 제게 괴담들을 들려 주곤 하셨어요. 빨간 원피스 소녀라던가, 13층의 계단이라든가, 철길 옆의 괴성, 그리고 방과 후에 나타나는 거대한 마스크를 찬 여인 같은 것들……
{character:player}마스크를 벗곤 “나 예뻐?”라고 물어보는 이야기지? 나도 들어봤어. 어떻게 대답하든 죽을 때까지 쫓아온다고 해서 생각이 많아졌지.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하하, 맞아요. 웃지는 말아 주세요, 그 이야기들을 들은 이후로 핑계를 대서 한 학기 동안 학교에 데리러 와 달라고 부탁을 드릴 정도였다니까요.
{character:player}풉, 할머니가 의도치 않게 어린 시절 흑역사를 만들어 줬네, 할머니도 알고 있어?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의도치 않았다라기보다는, 그게 바로 할머니의 목적이었던 거죠.
{character:player}응?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아버지의 영향으로, 저는 습관적으로 사람들과 '안전 거리'를 유지하면서 살아왔어요. 아버지께서는 다른 사람이 저의 생각을 꿰뚫어 보지 못하게끔 했죠, 그리고 설령 그게 가족이라도 예외는 없었어요.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하지만 할머니는 반대했어요. 할머니의 관점에서 가족이란 서로에게 방패가 되어 줘야만 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더욱 친밀해져야 한다고 믿으셨거든요.
{character:player}그 말은, 할머니가 널 그렇게 놀라게 만들었던 건 네가 도움을 요청하길 바라서였던 거야?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네, 정확해요. 그리고 할머니는 일부러 절 놀라게 만들기도 하셨어요, 악취미죠.
{character:player}예를 들면……?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아, 방금 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var:player_nickname} 씨의 어깨 위에 있는 인형은 어디서 사신 건가요?
{character:player}……무슨 인형?
히데키가 갑자기 화제와 상관없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자신의 어깨를 바라보며 번뜩 떠올렸다, 설마…… 무슨 불길한 거라도 본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갑자기 귓가에 서늘한 바람이 스쳐지나며 식은땀이 흘렀다. 그리고 놀란 나는 신속히 히데키 쪽에 붙어 그의 옷깃을 붙잡았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바로 이렇게요.
{character:player}……이! 제! 그! 만! 오늘 밤엔 악몽을 꾸고 싶지 않다고!
{character:아케치 히데키}{var:player_nickname} 씨, 그럼 저를 의지하셔도 괜찮아요. 저의 어깨를 내어 드리죠.
{character:player}이게 할머니가 널 위로하던 방법이야?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할머니는 무서워서 자기 손을 꼭 잡고 있는 제 모습을 좋아하셨어요, 어린아이는 응당 그래야 한다면서요. 무서우면 어른의 품으로 파고들라고 하셨죠. 그래서 전 고등학교에 들어간 이후로 더 이상 괴담이 무섭지 않게 됐지만, 그래도 가끔 무서운 척을 하며 할머니를 즐겁게 해 드리곤 했죠.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하지만 할머니가 떠나신 뒤론, 이렇게나 오랫동안 저와 이야기를 나눠 준 사람은 없었어요. 와 주셔서 고마워요. 잘 생각해 보니 {var:player_nickname} 씨를 만난 이 기간 동안엔, 제가 평생 동안 하지 않았을 법한 행동을 꽤 많이 했네요.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하지만 괜찮아요, 심지어 뭔가 기대도 되네요. 방금 {var:player_nickname} 씨께서 망설임 없이 제게 다가와 주신 것처럼, 저도 갑작스레 깨달았어요…… 저는 {var:player_nickname} 씨의 모습을 더 많이 보고 싶어요, 그리고 {var:player_nickname} 씨에게도, 더 많은 아케치 히데키를 보여 주고 싶어요.
이어서 히데키가 나의 손을 잡으며 눈을 마주쳐 왔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만약 괜찮다면, 저도 {var:player_nickname} 씨가 의지해 주는 대상이 되고 싶습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저는……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바로 대답해 주지 않으셔도 좋아요, 전 단지 제 생각을 알려드린 것 뿐이니, 부담을 갖지는 말아 주세요.
활짝 핀 꽃잎이 살랑이며, 평온한 정원에 산뜻한 바람이 불어와 포도 덩굴이 사락거렸다. 날 대신하여 대답을 하려는 것일까. 히데키는 다시 눈동자를 빛내며 나에게 초대 의사를 보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이 냄새는…… 혹시, 회화 과자 좀 드셔 보시겠어요?
{character:player}아하, 히데키도 화제를 돌리는 경우가 있네. 그래서…… 회화 과자가 뭐야?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쉽게 말하자면, 그냥 꽃을 이용해 만든 간식 같은 거예요.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옛말에 “문 앞에 회화나무를 심으면 금전운이 들어온다”라는 속설이 있죠. 옛 마을의 거의 모든 집들은 회화나무를 심어 두었어요, 그리고 여름이 되면 정원에 꽃향기가 퍼지죠. 어르신들은 회화를 따서 간식을 만들고, 아이들은 회화 꽃잎을 따서 그냥 먹기도 해요.
{character:player}네 할머니 같은 분이라면 분명 풍습을 따를 것 같은데, 그럼 분명 이 집에도 회화나무가 심어져 있겠지?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네, 뒤뜰에 한 그루 심어져 있어요. 가서 보시겠어요?
{character:player}당연하지, 회화 향기를 한번 제대로 맡아보고 싶은걸.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많이 따 놓을게요, 하지만 꼭 씻어서 드셔야 해요.
{character:player}알겠어!
무더운 여름, 물과 가까워지고 싶은 건 인간의 생존 본능이다. 심리 작용일까, 우물 근처는 더 시원하게 느껴졌다. 나는 우물 안으로 손을 넣어 차가운 기운을 얻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 없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조심하세요, 물통 넣을게요.
{character:player}아, 알았어……
히데키는 무거워 보이는 물통을 가볍게 들곤 우물 안으로 던져 넣었다. 곧 연결된 밧줄을 통해 물통을 서서히 위쪽으로 끌어올렸다. 그 과정에서 물통이 잠시 가볍게 흔들렸지만, 물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character:player}히데키는 힘이 약할 줄 알았는데, 상당히 세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그 말엔 뭔가 의미가 있어 보이네요. 만일 드라마 같은 전개라면, 이제 저는 {var:player_nickname} 씨에게 힘을 증명할 방법을 찾아야겠군요, 그것도 야심한 밤에 말이죠.
{character:player}콜록콜록…… 너 정말 히데키 맞아? 내가 잘못 들은 건가?!
히데키는 가만히 서서 웃었다, 나의 반응이 재밌었던 모양이다. 그 미소는 따뜻했지만, 약간 교활한 심보가 느껴졌다. 방금 자신이 한 말에 대해서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반응이었다.
어린 시절 추억을 간직한 이 정원으로 인해 히데키는 굉장히 편안해진 느낌이었다. 적어도…… 농담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character:player}앗, 차가워…… 여름에 우물 물로 손을 씻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야.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그럼 그 행복을 더 강하게 느껴보실래요? 차가운 과일을 넣는 거예요. 포도하고 리치, 그리고 수박까지 넣는 건 어때요?
히데키가 과일을 나무통에 담곤 숙련된 솜씨로 우물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의 바삐 움직이는 모습과, 이한시에서 따듯한 미소를 짓던 귀공자의 모습은 서로 맞물리지 않았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이건 할머니께서 알려 주신 방법이에요, 이렇게 우물에 넣어두면 금방 차가워지거든요. 한 번은 귀찮아서 과일을 정원 구석에 있는 항아리에 넣어 뒀었는데, 전혀 차가워지지 않았죠.
{character:player}히데키도 귀찮을 때가 있어? 넌 절대 나태해지지 않는 무한동력 인간인 줄 알았는데.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처음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을 땐 이웃분들도 많이들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단지 집안일을 거든 것 뿐이었는데, 이웃 어른들은 '그 집 아이는'이라며 칭찬을 쏟아냈죠. 그래서 한동안 '아케치 히데키'라는 이름은 동네 아이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이름이 됐어요.
{character:player}아, 그…… 왠지 그 사람들 생각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물론 그런 착한 손주가 있다면 분명 기뻐할 만한 일이었겠지만, 막상 할머니는 그런 걸로 저를 칭찬한 적은 없었어요.
{character:player}어째서?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음…… 잠시 생각 좀 해 볼게요…… 이렇게 말해 보죠, 할머니는 어린아이라면 더 활발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었어요. '말썽'을 피우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셨죠.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할머니는 저를 더 활발한 아이로 만들기 위해 많은 방법을 시도하셨어요. 매일 시간을 내서 친구를 찾아가 논다거나, 간식을 한 보따리 사와서 저를 '유혹'한다거나…… 하지만 나중에서야 제가 그런 것들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으시고는, 생각이 날 때마다 한숨을 쉬곤 하셨죠.
{character:player}하하, 정말 귀여운 할머님이시구나.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그래서 항상 아쉬워요, 만약 시간을 돌이킬 수 있다면, 더 잘 해 드릴 수 있었을 텐데.
분위기가 갑자기 무거워진 느낌이다. 히데키가 이 정원 속에서 보여 준 편안함은, 어린 시절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함일 것이다.
나는 그를 위로하자니 가슴 아픈 일을 떠올리게 할까 두려워 말을 잇지 않았다. 하지만 히데키는 재빨리 무거워진 분위기를 알아서 감지하곤,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느끼셨는지 모르겠지만, {var:player_nickname} 씨가 길을 잃었던 곳에 비해, 이 근처의 공기는 더 달콤하지 않나요? 옛말에 “문 앞에 회화나무를 심으면 재물운이 따른다”라는 속설이 있죠. 그래서 옛 마을의 집들은 거의 다 회화나무를 심었어요, 매번 여름이 되면 정원에는 꽃향기가 퍼졌죠.
{character:player}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아케치 가에도 뒤뜰에 회화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같이 가서 보시겠어요? 저도 어렸을 땐 또래 친구들이랑 몰래 나무에 올라가서 꽃잎을 따먹곤 했었어요, 어쩌다 벌들을 만나면 정신없이 도망쳐야 했지만 말이죠.
{character:player}오늘은 그런 일이 없길 바라야겠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혹시 모르죠. 그래도 괜찮아요, 제가 보호해 드리겠습니다.
히데키는 고집스럽게도 회화 꽃을 따는 일을 홀로 도맡았고, 여유가 생긴 나는 아케치 집안의 모든 역사를 지켜본 이 회화나무를 유심히 살폈다.
확실히…… 아주 큰 회화나무다. 내 생각엔 두 사람을 동원해도 이 나무 기둥을 감싸지 못할 것만 같았다. 가까이 다가가니 내 몸에 회화향이 스며드는 느낌이다.
{character:player}응? 여기 뭔가 그림이 그려져 있네?
나무에는 익숙한 마크가 그려져 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것은 수 년 전 유행했던 만화 속 남녀 주인공이 계약을 맺을 때 나타나던 마법 문양이었다. 손가락으로 계산해가며 그 만화가 나왔던 시기를 되짚어 보니, 아무래도 이 나무에 이런 문양을 그려 넣을 사람은 히데키밖에 없을 것 같았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정말 제대로 관찰하셨네요, 저도 잊어 버린 일인데 말이죠. 이건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에 새겨 넣은 문양인데, 묻어 둔 비밀을 기록하기 위해서 새겼었죠.
{character:player}만화처럼 편지를 써서 묻어 둔 다음, 성인이 되면 꺼내서 짝사랑에게 전달하는 내용인가? 비밀이 제대로 전달되는 경우는 거의 드문데, 이건 짝사랑에 빠진 세컨 주인공의 전개야.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자신에게 줄 편지를 묻어 두는 방식은 확실히 만화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이건 짝사랑과는 관계없어요. 생각해 보니…… 이걸 묻어 둔지도 이제 거의 십 년이 지났네요.
{character:player}축하합니다, 십 년이 만기되었습니다! 이제 스토리를 이어나갈 때가 왔군요.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하하, 그러네요. 그럼 바로 행동으로 옮겨 보죠.
히데키의 행동력에 힘입어 함께 나무 표식 바로 아래를 수직으로 파내려 가자, 금세 약간 녹슨 듯한 철재 케이스가 나타났다.
히데키는 손으로 철재 케이스의 흙을 털어내더니 모서리를 계속 만지작거렸는데, 무언가 망설이는 모양새였다.
{character:player}잠시 자리를 피해 줄까?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아니에요, 저는 제 모든 것을 {var:player_nickname} 씨와 함께 나누고 싶어요. 단지 이 편지는…… 제가 열 살 때였죠, 아버지와 크게 싸우고 나서 감정이 격해졌을 때 쓴 편지라서, 상당히 부정적이고 충동적인 생각이 포함되어 있을 거예요.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지금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닌 것들이었지만, 열 살의 아케치 히데키에게는 하늘이 무너져 내릴 듯한 스트레스였었죠.
히데키는 항상 '만능'인 이미지였고, 그동안 연약한 감정은 거의 표출하지 않았었다. 나는 한발 다가가 그와 마주섰다.
{character:player}이 편지의 내용이 무엇이든, 이제는 바뀔 수 없는 과거야. 하지만 중요한 건 현재와 미래잖아.
{character:player}'과거에서 교훈을 얻으라', 그런 말도 있잖아. 지금 네 손에 쥐고 있는 편지를 보면, 너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될지도 몰라.
{character:player}내가 알고 있는 히데키는, 절대 문제를 피하는 사람이 아니야.
짹짹…… 참새들이 지저귀며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알리고 있었다. 히데키의 눈은 유난히 빛나 보였고, 그는 조심스럽게 수 년간 봉인되어 있던 케이스를 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던 것은, 예상과는 달리 그가 어릴 적 분노에 차 써 내려갔던 편지가 아니었다.
{character:player}“나의 손자 히데키, 글로써 만나는구나. 이 편지를 보거든 부디 기분 나빠하지 않길 바란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이건…… 할머니가 내게 남기신 친필서?
“밤중에 깨어나 뜻밖에 너의 비밀을 발견해 버렸구나. 네 허락 없이 편지를 바꿔치기해 버린 것에 대해, 이후에 네가 이것을 열어 볼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미안하구나.”
“히데키, 넌 지금 중학생이니? 아니면 고등학생? 설마 대학생이라거나, 이미 사회인이 된 걸까? 좋아하는 사람은 있고? 아직 혼자 지내니?”
“호호, 부끄러워 말거라. 할머니는 비웃지 않을 거야. 사실 이 위에 적힌 내용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단다, 할머니가 가장 묻고 싶은 건, 바로 지금 네가 즐겁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란다.”
“즐거움. 그래, 바로 이 단어야. 일반적인 사람이든 히데키 가의 후계자든, 네가 어떤 일을 하든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은 바로 다름 아닌 즐거움이란다.”
“할머니는 네가 이 편지를 열어 보았을 때, 그저 즐겁고 행복한 상태였으면 좋겠구나. 내가 바라는 건 그게 전부란다. ―널 영원히 사랑하는 할머니가”
이 편지는 할머니의 염원을 모두 담고 있었지만, 내용은 상당히 간결했다. 부드럽고 간결한 글귀를 통해, 한밤중 책상에 앉아 손자를 걱정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느껴졌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제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는 제가 정치가가 되어 아케치 가의 미래를 짊어져야 한다고 교육하셨어요. 때문에 저를 우수한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수많은 숙제를 내 주셨고, 저는 거의 대부분 시간을 그것에 쏟아부을 수밖에 없었죠.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하지만 결국 전 완벽한 기계가 아니었던 거예요. 아버지가 압박할수록, 저는 더욱 거세게 반항했었거든요……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학생회장이든 마작부 부장이든, 사실 마음속으론 그것들과 관련된 일들을 배척하고 있었어요. 왠지 제가 잘하면 잘할수록, 결국 아버지의 방침이나 교육이 성공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character:player}하지만 그런 일들이 너한테 딱인 거 아니었어?
{character:아케치 히데키}맞아요, 하지만 속으로는 그런 기쁨들을 외면해 왔었죠. 그런 일들을 처리할 때면 사실 기쁨이 먼저 차올랐어요, 심지어 여유롭기까지 했죠.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지금까지는 다른 사람에게 그걸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어요, 특히 아버지에게는요. 하지만, 이젠 그것도 중요하지 않게 되었네요.
히데키는 할머니의 편지를 다시 접어 품속에 집어넣었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이 편지로 인해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언제나 사랑 받는 존재였다는 사실을요. 저, 히데키의 인생은 제 자신만의 것입니다. 아버지의 소유물도 아니고, 할머니의 소망에 의한 것 또한 아니겠죠.
{character:아케치 히데키}타인의 관점 때문에 저의 삶이 좌지우지되어선 안 되는 거였어요, 제 인생은 분명 저만의 것일 테니까요. 만약 지금 할머니의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아마…… 즐겁다고 했을 거예요.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즐거운 삶을 선택할 거라고 답했겠죠.
{character:player}할머니가 들었다면 기뻐하셨겠는걸.
{character:아케치 히데키}고마워요…… 만약 제가 {var:player_nickname} 씨를 이곳에 데려왔다는 사실을 알면, 할머니도 기뻐하셨을 거예요. 왜냐면 그건 할머니의 또 다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었을 테니까요.
{character:player}……에?!
해님이 분위기를 파악했는지 구름 뒤로 숨어 버리며,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딱 알맞은 분위기를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히데키가 내 옆으로 와 고개를 들고는, 내 머리 위에 앉은 꽃잎을 따갔다.
{character:아케치 히데키}앞으로도, {var:player_nickname} 씨를 이곳에 자주 초대해도 될까요?
{character:player}그래……
어르신을 실망시키면 안 되잖아?